‘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마태 22,12)
혼인 예복은 간단히 말하면 믿음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당을 다니면 믿음이 있습니까? 십자 성호를 그을 줄 알면 믿음이 있나요? 주님의 기도를 외우거나 묵주기도를 바치면 믿음이 있는 것일까요? 만일 정말 사악한 사람, 즉 아내를 밤마다 두드려패고 온갖 탐욕에 사로잡혀 이웃의 재산을 탐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에 열거한 외적 행위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외적으로 자신의 평판을 낫게 해 주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하려고 하지요.
믿음은 외적 표지로 간단하게 있다 없다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밀한 것이지요. 그래서 믿음을 올바로 갖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예 그 개념조차 좀처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신뢰한다는 표현입니다. 즉,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표지는 없지만 그 상대가 그것을 이룰 힘이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내가 무언가를 믿고 맡긴다고 할 때에 그 상대에게 내가 맡기는 것을 관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눈에 드러나는 지표는 당장에는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내적인 신뢰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 안에서는 그러다가 뒷통수를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고 맡겼는데 그것을 엉망으로 해서 돌려 받는 경우도 있지요.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뢰를 쌓아 간다는 것, 믿음을 형성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는 이유는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일련의 행동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기꾼들은 첫인상을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요. 빠른 시간 안에 믿음을 형성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큰 건을 벌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형성하고 그 믿음이 무너지고 하면서 우리는 점점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이해관계로 서로 의지하고 살긴 하지만 가장 깊은 내면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생각이 있지요. ‘결국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나 자신 말고는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틀렸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확실하게 믿음을 둘 수 있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시고 당신의 말씀에 신실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그분은 세상을 만드시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당신의 진리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 인간의 변덕이 그분을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하느라 마치 그분이 변덕스러운 분처럼 느껴질 뿐이지 그분은 단 한 번도 당신의 진리를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이지요.
복음은 그 하느님께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행하시는 일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잔치를 벌이고 사람들을 초대하지만 정작 초대받은 이들은 오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잔치를 취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잔치의 초대 영역을 확장하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를 초대하시고 그 모든 이의 범위에는 악한 사람, 선한 사람 모두가 포함이 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따라 붙으니 그것은 바로 ‘혼인 예복’ 즉 믿음인 것이지요. 물론 이 말을 들으면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럼 하늘 나라는 악한 사람도 있는 곳인가?’라고 말이지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네 하늘 나라는 전에 악했으나 뉘우치고 회개한 이들이 많이 모인 곳입니다.’라고 말이지요. 바로 그 회개의 전제조건이 ‘믿음’인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즉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과 진리를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스스로 ‘선’을 이룰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실 선과 악의 정의에서부터 우리는 세상과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 당신이 선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에게서 벗어난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악이 됩니다. 다만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모를 수 있고 특정 종교에 속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내면으로 하느님의 선하심과 진리를 아는 수많은 이들이 세상에는 존재할 수 있고, 반대로 외적으로는 종교적 특성을 모조리 드러내고 있지만 실제 자신의 삶으로는 전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위선적인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분의 선하심과 진리와 사랑에 기댈 줄 알고 우리를 추스려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혼인 예복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회개한 죄인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예복은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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