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자신을 아프게 하는 모든 것을 악으로 규정하기 쉬운 사회입니다. 이러한 반응은 사회 여러 분야에 침투해 있어서 교회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유익한 고통인지 아닌지 크게 구분하지 않고 지금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성가시게 만들면 흔히 '악'으로 규정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악이라는 것은 우리를 참된 선에서 떼어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겉으로는 좋은 외양을 지녔어도 우리를 참된 선에서 떼어 놓는 일을 하는 것이면 선이 아니라 악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의 경우, 즉 겉으로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참된 선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선이 됩니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하고 계실 당시에 누룩이 가득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는 예수님은 거추장스럽고 싫은 존재였습니다. 자신들이 행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고 자신들이 미천하게 바라보는 이들에게 하늘 나라가 있다고 하는 것이 너무너무 싫었습니다. 하늘 나라는 자신들의 소유 안에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하늘 나라가 폭력을 쓰는 자들에 의해서 강탈당하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지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악으로 규정했습니다. 죽여 버려야 하고 없애 버려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의 끝을 압니다. 예수님은 악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고 영원한 생명의 진리를 지니고 계신 분으로 선이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아버지께 이끌어 가기 위해서 그분을 가르쳐 주셨고 우리가 걷고 있는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이고 선이신 분이십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스승'이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의 여정을 인도하고 이끌어 갈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능력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려면 그 누군가가 나의 현재의 상태를 변화 시키게 되고 그것은 나에게 아픈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모든 권위들을 무너뜨리는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종교'도 포함됩니다.
영원한 생명의 여정은 현세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를 자극하고 우리가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이끌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여정은 십자가의 길이 되는 것이고 흔히 아프고 힘든 여정이 됩니다. 그래서 그 길을 선택하려는 사람이 좀처럼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니 그 가운데에는 진리의 향기를 맡고 참된 선을 향하여 날아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자신을 조금씩 내어바쳐 진실된 사랑을 배우고 이해하는 이들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1요한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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