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렀냐? 라고 대꾸하는 복돌이 |
1. 부르심
하느님은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데에는 그분의 부르심이 선재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부르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예 존재하지 조차 않았을 테니까요.
모든 인간은 부름받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예외없이 모두를 부르십니다. 그 첫번째 부르심은 우리 인간의 고유한 최종목표라고 할 수 있는 '구원'에로의 부르심입니다. 모든 인간은 구원에 가 닿도록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르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에 의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동안 하느님은 당신의 사명을 위한 특별한 부르심을 하기도 하십니다. 이 선택받은 이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직무에 특별히 부름받아 그 소명을 다 해내어야 합니다. 이는 한편으로 영광의 자리이며 동시에 고난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런 자리에 아무나 부르시지는 않습니다. 구원을 향한 부르심은 모두에게 주어지지만 당신의 특별한 사명의 부르심은 선택된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갖가지 '성소'들이 생겨납니다. 하느님에게 특별히 헌신하여 그분을 알고 배우고 그분을 선포하도록 맡겨지는 직무와 서원에로의 부르심입니다.
2. 응답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니 언뜻 부르시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르심에는 반드시 '응답'이 뒤따라야 합니다.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하는 구원의 부르심에도 우리는 마땅한 응답을 드려야 합니다. 마치 구명정에서 물에 빠진 사람에게 내미는 손과 마주잡는 손이 하나로 이어질 때에 두 손이 결합되고 끌어당김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손을 아무리 뻗어도 잡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이 응답은 당연히 특별한 소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보시고 그들에게 일을 맡기시겠노라고 부르시지만 응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이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응답하지 않아서 그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 자리는 '고난'의 자리로만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시작부터 모든 것을 알고 응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갑니다. 신앙생활도 그렇고 성소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그분은 우리보다 월등히 뛰어나시고 불가능이 없으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믿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이 사명을 이행해 나가는 데에 부족한 부분을 다 채워 주십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부르심에 이렇게 응답하도록 합시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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