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감추시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마치 밤하늘의 별이 우리 눈에는 우습게 보이지만 실제로 가까이 다가서면 태양보다도 훨씬 더 큰 어마어마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수천만광년의 거리가 그 위용을 감추어 우리가 그저 반짝이는 하나의 빛으로만 인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하느님을 무력해 보이고 아무런 힘도 없는 분처럼 느끼지만 훗날 우리가 하느님을 직접 마주하게 될 때에 우리는 그분의 어마어마한 진정한 존재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가 편하게 마주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대상을 고르고 그에게 당신의 말씀을 부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를 우리에게 파견하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사도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도들은 당신의 후계자들을, 또 그 후계자들은 그들을 도와 함께 일을 할 이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날의 사제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의 신앙입니다.
그렇게 보냄 받는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합니다. 그들은 건물을 짓는 사람도 아니고 행정가도 아닙니다. 그들이 해야 하는 가장 최우선의 과제는 ‘하느님게서 명하시는 것을 그대로 전해 주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의 여러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그들은 마치 잘 닦아놓은 유리처럼 자신이 투과시키는 빛을 가장 깨끗하고 투명하게 비추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는 자신의 일상 안에 하느님의 메세지가 오염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메세지를 전달받는 이들에게도 사명이 주어집니다. 그것은 그 메세지를 ‘듣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귀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듣는다’고 하는 표현은 듣고 실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지 않은 신앙인들은 그저 듣기만 하고 정작 실행하지는 않아 자기자신을 속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말씀 전달의 사명은 엄중한 것입니다. ‘주제넘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고까지 표현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이들은 자신의 영혼에 닥친 위험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훗날 하느님의 본래적인 위용을 마주하게 될 때에 그들은 그제서야 뉘우쳐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자비의 때이고 그래서 당신의 영광이 감춰져 있는 시대입니다. 이 시기를 기회로 삼을지 아니면 가중처벌의 기회로 삼을지는 우리 각자에게 달린 셈입니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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