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는 ‘존재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있다’는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 말로는 참으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철학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서양의 표현들을 우리글의 적합한 표현을 찾는 것이 어려운지도 모르지요.
존재한다는 것은 눈 앞의 휴대폰이 있다가 그것을 어디 다른 데 숨기면 ‘없다’고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존재론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존재’를 얻음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존재’가 없는 것은 단순히 어딘가로 치워진 게 아니라 아예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그것을 상상하기는 힘듭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것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로 그 생각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존재하지 않음’을 온전히 생각할 수 없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없던 존재들이 생겨나게 되었지만 하느님은 원래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느님은 우리가 절대로 온전히 인지할 수 없는 분이시라는 말이지요. 우리는 시간과 공간 안의 유한한 존재이지만 하느님은 그 모든 유한성의 존재들을 창조하신 분이시니까요.
‘나는 있는 나다’라는 말은 우리의 주님이신 하느님은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존재를 부여하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존재하는 것의 주인은 바로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선하고 아름다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분의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더욱 온전히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그분에게서 멀어지면 그분의 좋은 것들을 점점 더 상실하게 되지요. 이는 마치 빛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 빛을 더욱 받아 밝아지고 반대로 빛에서 멀어지거나 빛을 가리면 ‘어둠’이 생겨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세상의 좋고 나쁜 것은 바로 이 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근본 자체로 악한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창조된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온전히 좋고 아름답게 머물러 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좋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가 바라보기에 ‘좋고 나쁜 것’의 관점과는 다릅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부가 철철 넘치는 연예인은 외적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일 수는 있지만 내면이 무너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누추한 복장의 사람이지만 그 내면에 하느님을 향한 경외가 가득차 있을 수도 있지요.
우리는 ‘있는 나’이신 분께로 다가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분께 다가가는 노력은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창조된 목적 그대로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내가 아닌 나를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전히 많은 세상 사람들은 이를 올바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자신을 찾아 공허하게 시간과 노력을 허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행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존재한다는 것은 눈 앞의 휴대폰이 있다가 그것을 어디 다른 데 숨기면 ‘없다’고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존재론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존재’를 얻음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존재’가 없는 것은 단순히 어딘가로 치워진 게 아니라 아예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그것을 상상하기는 힘듭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것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로 그 생각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존재하지 않음’을 온전히 생각할 수 없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없던 존재들이 생겨나게 되었지만 하느님은 원래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느님은 우리가 절대로 온전히 인지할 수 없는 분이시라는 말이지요. 우리는 시간과 공간 안의 유한한 존재이지만 하느님은 그 모든 유한성의 존재들을 창조하신 분이시니까요.
‘나는 있는 나다’라는 말은 우리의 주님이신 하느님은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존재를 부여하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존재하는 것의 주인은 바로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선하고 아름다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분의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더욱 온전히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그분에게서 멀어지면 그분의 좋은 것들을 점점 더 상실하게 되지요. 이는 마치 빛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 빛을 더욱 받아 밝아지고 반대로 빛에서 멀어지거나 빛을 가리면 ‘어둠’이 생겨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세상의 좋고 나쁜 것은 바로 이 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근본 자체로 악한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창조된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온전히 좋고 아름답게 머물러 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좋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가 바라보기에 ‘좋고 나쁜 것’의 관점과는 다릅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부가 철철 넘치는 연예인은 외적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일 수는 있지만 내면이 무너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누추한 복장의 사람이지만 그 내면에 하느님을 향한 경외가 가득차 있을 수도 있지요.
우리는 ‘있는 나’이신 분께로 다가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분께 다가가는 노력은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창조된 목적 그대로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내가 아닌 나를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전히 많은 세상 사람들은 이를 올바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자신을 찾아 공허하게 시간과 노력을 허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행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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