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창세 50,19)
오직 하느님만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하느님은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의 권위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완전 정반대가 된 케이스지요. 하지만 일상적인 경우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느님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올바르고 공정하게 분별하고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저마다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성경의 요셉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요셉이 당장 형들에게서 시기를 받고 노예상에 팔려갔을 때에는 마찬가지로 억울한 심정에 원망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일의 마무리에 가서 보니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절대로 인간의 권위가 아닙니다. 인간의 권위가 최종적으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목숨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을 이미 살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우리의 영혼마저도 구렁텅이에 넣을 권위를 지니신 분, 모든 것을 참된 공정과 정의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런 그분을 알면서도 그분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 안에서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하느님은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의 권위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완전 정반대가 된 케이스지요. 하지만 일상적인 경우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느님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올바르고 공정하게 분별하고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저마다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성경의 요셉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요셉이 당장 형들에게서 시기를 받고 노예상에 팔려갔을 때에는 마찬가지로 억울한 심정에 원망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일의 마무리에 가서 보니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절대로 인간의 권위가 아닙니다. 인간의 권위가 최종적으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목숨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을 이미 살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우리의 영혼마저도 구렁텅이에 넣을 권위를 지니신 분, 모든 것을 참된 공정과 정의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런 그분을 알면서도 그분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 안에서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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