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여전히 그러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에 있을 적에 술자리에 가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미덕이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서로 술을 권하면서 얼른 들이키고 잔을 돌려 주어야 했지요. 특히나 그런 것은 ‘서열’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소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주는 잔은 얼른 비우고 다시 내어 바쳐야 예의에 맞는 것이었지요. 행여 그 잔을 거부하면 그 높은 사람의 권위를 무시하는 처사가 되곤 했었습니다.
술을 많이 마셔도 멀쩡한 사람은 마치 대단한 무슨 능력을 지닌 것처럼 추앙받고 마시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쪼잔한 사람, 비겁한 사람이 되어 버리곤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같이 마시기를 자꾸 권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은근 기분나빠 하기도 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이상한 문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술을 처음 접할 무렵부터 이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술자리에서 다른 문화가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보지를 못한 셈입니다. 그렇게 건강이 망가져가고 절로 술에 중독되어 가는 것이지요. 술은 단순한 기호 식품이고 마시기 싫으면 그만인데 한국에서 ‘술’이라는 것은 마치 친교의 핵심 수단인 것처럼 자리잡아 있는 것 같습니다.
천주교 술꾼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예수님도 포도주를 드셨고 먹보에 술꾼이라고 불렸다’는 것입니다. 천만에요. 예수님은 절제 가운데 드셨고 먹보에 술꾼이라고 부른 것은 바리사이들이 비난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말일 뿐입니다. 물론 음식을 드셨고 포도주를 함께 나누셨지만 절대로 품위를 잃으신 적은 없지요. 제자들에게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거나 취해서 추태를 부리신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생각 없는 이들이 만들어 낸 문화가 주류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식 있고 교양 있는 이들은 필요한 때가 아니면 자신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술자리’의 문화는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술이 없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어린 시절 술도 없이 친구와 어떻게 그렇게 놀 수 있었을까요? 우리나라의 술 문화는 한번 점검받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술을 많이 마셔도 멀쩡한 사람은 마치 대단한 무슨 능력을 지닌 것처럼 추앙받고 마시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쪼잔한 사람, 비겁한 사람이 되어 버리곤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같이 마시기를 자꾸 권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은근 기분나빠 하기도 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이상한 문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술을 처음 접할 무렵부터 이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술자리에서 다른 문화가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보지를 못한 셈입니다. 그렇게 건강이 망가져가고 절로 술에 중독되어 가는 것이지요. 술은 단순한 기호 식품이고 마시기 싫으면 그만인데 한국에서 ‘술’이라는 것은 마치 친교의 핵심 수단인 것처럼 자리잡아 있는 것 같습니다.
천주교 술꾼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예수님도 포도주를 드셨고 먹보에 술꾼이라고 불렸다’는 것입니다. 천만에요. 예수님은 절제 가운데 드셨고 먹보에 술꾼이라고 부른 것은 바리사이들이 비난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말일 뿐입니다. 물론 음식을 드셨고 포도주를 함께 나누셨지만 절대로 품위를 잃으신 적은 없지요. 제자들에게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거나 취해서 추태를 부리신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생각 없는 이들이 만들어 낸 문화가 주류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식 있고 교양 있는 이들은 필요한 때가 아니면 자신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술자리’의 문화는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술이 없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어린 시절 술도 없이 친구와 어떻게 그렇게 놀 수 있었을까요? 우리나라의 술 문화는 한번 점검받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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