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명절이면 언제나 친척 어르신을 찾아 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날은 제가 예비 신학생이라는 것을 안 한 어느 어르신이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예비 신학생? 와? 신부질 할라꼬?”
그 표현은 지금까지도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어른에게 사제의 소중한 직무는 ‘신부질’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사제의 직무를 아무렇게나 표현하는 그 표현에서 우리는 몇 가지 내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존중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가 지닌 ‘직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단순히 서품을 받고, 단순히 수도서원을 한다고 그 자체로 사람들의 존중을 이끌어내지는 못합니다. 신자들은 그들 앞에서 예우를 갖추겠지만 실은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바라보고 있지요. 그리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제상과 수도자상에 맞지 않으면 속으로 비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한 사람의 직분은 그가 그 일을 실제적으로 수행할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의사가 의사인 이유는 사람을 치유하기 때문이고 스승이 스승인 이유는 제자를 이끌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돈벌이를 하려고 들기만 하면 그는 이윤을 남기려는 장사꾼일 뿐이며, 스승이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지는 않고 그저 시간만 때우고 최소한의 것만 하려고 하면 그는 월급쟁이일 뿐입니다. 사제가 신부질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신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의 의견은 부차적인 것일 뿐입니다. 한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가 아닌가 하는 것이 핵심이지요. 예수님은 가장 본인의 직분에 충실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들의 질시와 중상과 험담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이들에게도 내치임을 당해야 했지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신부질을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 하던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마지막 판단은 하느님의 몫이니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예비 신학생? 와? 신부질 할라꼬?”
그 표현은 지금까지도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어른에게 사제의 소중한 직무는 ‘신부질’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사제의 직무를 아무렇게나 표현하는 그 표현에서 우리는 몇 가지 내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존중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가 지닌 ‘직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단순히 서품을 받고, 단순히 수도서원을 한다고 그 자체로 사람들의 존중을 이끌어내지는 못합니다. 신자들은 그들 앞에서 예우를 갖추겠지만 실은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바라보고 있지요. 그리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제상과 수도자상에 맞지 않으면 속으로 비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한 사람의 직분은 그가 그 일을 실제적으로 수행할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의사가 의사인 이유는 사람을 치유하기 때문이고 스승이 스승인 이유는 제자를 이끌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돈벌이를 하려고 들기만 하면 그는 이윤을 남기려는 장사꾼일 뿐이며, 스승이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지는 않고 그저 시간만 때우고 최소한의 것만 하려고 하면 그는 월급쟁이일 뿐입니다. 사제가 신부질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신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의 의견은 부차적인 것일 뿐입니다. 한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가 아닌가 하는 것이 핵심이지요. 예수님은 가장 본인의 직분에 충실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들의 질시와 중상과 험담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이들에게도 내치임을 당해야 했지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신부질을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 하던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마지막 판단은 하느님의 몫이니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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