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사옵니다. (시편 84,11)
우리나라 속담에 용꼬리보다는 뱀대가리가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수준일 바에야 높은 레벨에서 허우적대니 차라리 낮은 이들 가운데 으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성경적 차원에서는 정반대로 가르칩니다. 악인의 천막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살기보다는 차라리 하느님 집 문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합니다.
왜그럴까요? 누군가의 문간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는것보다는 다른 누군가의 천막 안에서 떵떵거리며 주인으로 지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요?
사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입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정말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적어봅니다.
하느님과 누군가를 비교한다는 것은 굉장히 우스운 일입니다. 비교한다는 것부터 하느님에게는 사실 모욕적인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을 어디에 감히 빗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일은 수시로 일어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척’을 할 뿐이지요. 그리고 일상 안에서 수많은 것을 재어가며 살아갑니다. 즉, 무엇이 더 나에게 유익할 것인가를 놓고 순간 순간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느님 안에서 선택을 합니다. 그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자신의 ‘약함’ 뿐이지요. 그러나 그 약점마저도 그는 이겨내고야 맙니다. 반대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아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이기성을 바탕으로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선택 되기도 내던져 지기도 하는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지요.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 앞에 끊임없는 변명이 마음 속에서 솟아 나옵니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잖아?’, ‘그럼 날더러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죽으란 말인가?’ 아니요. 다들 그렇게 살아가지 않고, 또 그런다고 무조건 죽으란 법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혜의 원천이시지요. 그래서 하느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바로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만들지요.
반면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욕구에 따라 서로 연합하고 갈라서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뿔뿔이 서로 찢어지고 말지요.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자신의 욕구와 부합하는 이를 만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악인의 장막 안에는 ‘다툼, 분쟁, 시기, 질투, 증오, 앙심, 원한’과 같은 것들 뿐입니다. 하느님의 집 문간에는 ‘정의, 평화, 온유, 인내, 사랑, 친절, 선행’과 같은 것들이 흘러나오지요. 그러나 악에 물든 그들은 그러한 가치들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악인의 장막 안에서 최선을 다해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할 뿐이지요.
우리나라 속담에 용꼬리보다는 뱀대가리가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수준일 바에야 높은 레벨에서 허우적대니 차라리 낮은 이들 가운데 으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성경적 차원에서는 정반대로 가르칩니다. 악인의 천막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살기보다는 차라리 하느님 집 문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합니다.
왜그럴까요? 누군가의 문간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는것보다는 다른 누군가의 천막 안에서 떵떵거리며 주인으로 지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요?
사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입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정말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적어봅니다.
하느님과 누군가를 비교한다는 것은 굉장히 우스운 일입니다. 비교한다는 것부터 하느님에게는 사실 모욕적인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을 어디에 감히 빗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일은 수시로 일어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척’을 할 뿐이지요. 그리고 일상 안에서 수많은 것을 재어가며 살아갑니다. 즉, 무엇이 더 나에게 유익할 것인가를 놓고 순간 순간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느님 안에서 선택을 합니다. 그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자신의 ‘약함’ 뿐이지요. 그러나 그 약점마저도 그는 이겨내고야 맙니다. 반대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아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이기성을 바탕으로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선택 되기도 내던져 지기도 하는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지요.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 앞에 끊임없는 변명이 마음 속에서 솟아 나옵니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잖아?’, ‘그럼 날더러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죽으란 말인가?’ 아니요. 다들 그렇게 살아가지 않고, 또 그런다고 무조건 죽으란 법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혜의 원천이시지요. 그래서 하느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바로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만들지요.
반면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욕구에 따라 서로 연합하고 갈라서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뿔뿔이 서로 찢어지고 말지요.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자신의 욕구와 부합하는 이를 만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악인의 장막 안에는 ‘다툼, 분쟁, 시기, 질투, 증오, 앙심, 원한’과 같은 것들 뿐입니다. 하느님의 집 문간에는 ‘정의, 평화, 온유, 인내, 사랑, 친절, 선행’과 같은 것들이 흘러나오지요. 그러나 악에 물든 그들은 그러한 가치들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악인의 장막 안에서 최선을 다해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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