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그들 앞에서 물러 나와 울었다. (창세 42,24)
요셉이 원했던 것은 가족의 안부를 아는 것이었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막내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엇나가 있던 형들, 이미 죄를 지은 형들은 그것마저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궁리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놓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얻음으로써 결국 우리의 전 존재를 온전히 보전하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 길들여져 있고 세상적인 사고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내어놓기’를 거부하지요.
요셉은 형들에게 일종의 시련을 줍니다. 그리고 형들이 고민하고 뉘우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뒤에 가서 겪고 있는 감정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언뜻 냉혹하고 잔인해 보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가 고통받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던져 놓으시고 물러나서 사랑하는 당신 자녀들의 이런 저런 모습들을 지켜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벤자민을 데려와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아버지와 우리의 모든 가족을 데려와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유의지를 하느님 앞에 내어 바쳐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살 길입니다.
요셉이 원했던 것은 가족의 안부를 아는 것이었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막내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엇나가 있던 형들, 이미 죄를 지은 형들은 그것마저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궁리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놓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얻음으로써 결국 우리의 전 존재를 온전히 보전하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 길들여져 있고 세상적인 사고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내어놓기’를 거부하지요.
요셉은 형들에게 일종의 시련을 줍니다. 그리고 형들이 고민하고 뉘우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뒤에 가서 겪고 있는 감정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언뜻 냉혹하고 잔인해 보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가 고통받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던져 놓으시고 물러나서 사랑하는 당신 자녀들의 이런 저런 모습들을 지켜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벤자민을 데려와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아버지와 우리의 모든 가족을 데려와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유의지를 하느님 앞에 내어 바쳐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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