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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 사제직의 두가지 면

저는 신학자가 아닌지라 ‘직무 사제직’과 ‘보편 사제직’의 기원과 역사와 같은 것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보편 사제직이 있고, 그 가운데 특별한 ‘직무 사제직’을 맡은 이들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압니다. 그리고 교회가 소중히 가꾸어 놓은 직무 사제직에 수많은 성인들이 언제나 존중하고 순명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도 압니다.

다른 한 편, 직무 사제직을 맡고 있는 당사자로서 그 직분의 중요성과 그 직분을 떠맡은 이의 나약함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제라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며 여러가지 인간적인 약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릇된 판단을 하기도 하고 엉뚱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도 잘 알지요.

저는 교회가 소중히 해 온 직무 사제직을 존중하고 아낍니다. 사제가 없으면 가톨릭 교회의 소중한 보물인 미사도 고해성사로 거행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일상의 삶을 버리고 이 특별한 직무를 떠맡은 이들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인간의 나약함도 직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유혹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첫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많은 기도와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신자분들 중에 사제의 나약함과 부족함, 심지어는 죄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열심히 사는 사제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사제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이 열심히 잘 살려고 노력하는 사제들마저도 힘들게 한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래서 참으로 조심스러운 부분이지요.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사랑일진데 갈수록 저마다의 생각과 판단에 사로잡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랑이 희석되는 느낌이라 안타깝습니다. 신자분들은 많이 똑똑해졌고 사제분들도 나름 세상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자꾸 불협화음이 들려오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의와 자비는 공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비 없는 정의는 매서운 칼날이 되어 수많은 가슴을 후려파고, 정의 없는 자비는 모든 어두움마저도 무분별하게 수용하여 결국 온 지체를 병들게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 시대에 누가 진정한 정의와 자비를 이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에게 기대지 않는 모든 이들,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는 이들은 분명 어딘가 병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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