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보면 위의 구도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신앙을 중심으로 두 가지 행위가 나뉘어지는 셈입니다.
전자의 행위는 구원을 얻으려는 외적 노력을 말합니다. 즉 율법의 시대의 행위를 말하지요. 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의 상태에 도달하겠다는 노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원에 이르는 이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요. 오직 선택된 이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과 같이 학식이 있고 삶이 어느정도 윤택해서 율법적인 생활을 이룰 수 있었던 이들만이 꿈꿔볼 수 있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나마도 모두가 이룰 수는 없었고 대부분은 위선자로 살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 즉 믿음이 등장하는 시기가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율법적 행위의 준수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즉, 예전에는 한계단 한계단 올라서 고층빌딩 옥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면 이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도움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면 영원한 상급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나 소외되었던 이들, 살기 바쁘고 구원은 꿈도 꾸지 못한 이들이 무척 기뻐했지요.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는 그에 합당한 생활을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믿음이 거짓된 믿음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니까요. 여기서 두 번째 행위가 등장합니다. 바로 믿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열매’를 말하지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여전히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남을 증오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탐욕에 사로잡혀 있고 한다면 그는 자신이 ‘믿음이 없는 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음이냐 행위냐를 두고 곧잘 다투곤 하는 것은 바로 행위가 두 부분을 지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율법의 행위는 파기되었지만 반대로 믿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행위는 더욱 굳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법적 요소를 지키느냐 아니냐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믿음의 자녀로서 자유롭지만, 믿음을 바탕으로 마땅히 해 나가야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를 지금 이 구도로 읽어보신다면 아마 조금은 더 이해가 쉬우리라 생각합니다.
전자의 행위는 구원을 얻으려는 외적 노력을 말합니다. 즉 율법의 시대의 행위를 말하지요. 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의 상태에 도달하겠다는 노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원에 이르는 이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요. 오직 선택된 이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과 같이 학식이 있고 삶이 어느정도 윤택해서 율법적인 생활을 이룰 수 있었던 이들만이 꿈꿔볼 수 있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나마도 모두가 이룰 수는 없었고 대부분은 위선자로 살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 즉 믿음이 등장하는 시기가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율법적 행위의 준수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즉, 예전에는 한계단 한계단 올라서 고층빌딩 옥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면 이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도움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면 영원한 상급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나 소외되었던 이들, 살기 바쁘고 구원은 꿈도 꾸지 못한 이들이 무척 기뻐했지요.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는 그에 합당한 생활을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믿음이 거짓된 믿음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니까요. 여기서 두 번째 행위가 등장합니다. 바로 믿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열매’를 말하지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여전히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남을 증오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탐욕에 사로잡혀 있고 한다면 그는 자신이 ‘믿음이 없는 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음이냐 행위냐를 두고 곧잘 다투곤 하는 것은 바로 행위가 두 부분을 지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율법의 행위는 파기되었지만 반대로 믿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행위는 더욱 굳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법적 요소를 지키느냐 아니냐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믿음의 자녀로서 자유롭지만, 믿음을 바탕으로 마땅히 해 나가야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를 지금 이 구도로 읽어보신다면 아마 조금은 더 이해가 쉬우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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