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광야에서의 시기 동안 악마가 다가옵니다. 악마는 점점 더 발전하는 3가지 종류의 유혹을 들고서 다가옵니다.
돌로 만드는 빵
가장 먼저는 돌로 빵을 만들어보라는 요구였습니다. 우리의 본성적 욕구를 충족하라는 언뜻 정당해 보이는 요구였지만 그것을 신성을 통해서 하라는 것이었지요. 즉,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거룩한 신성에 육신의 요구가 복종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다가오는 유혹이지요. 언제나 세상 것을 먼저 하고 나머지로 거룩한 것을 챙기려는 마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는 성경 말씀으로 이를 확고히 합니다.
권세와 영광
다음으로 악마가 들고 온 카드는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입니다. 출세를 지향하는 것은 인간에게 공통적인 유혹이지요.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더 나은 무언가를 얻으려는 그 탐욕 때문에 결국 최종적으로 악마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지요.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고 오직 그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는 말씀으로 대응합니다.
말씀의 그릇된 해석
마지막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극히 악마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지요. 번번이 말씀 앞에서 넘어지게 되자 이번에는 아예 말씀을 들고 나옵니다. 성경에 적힌 그대로 하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는 결정적으로 하느님 앞에 대항하는 그릇됨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을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주체적으로 해 보려는 것이고 그것을 말씀을 바탕으로 핑계를 삼으려는 것이었지요. 간단히 표현하면 ‘당신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했다!’라고 주장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즉, 그 안에 반항하는 정신이 숨어있는 것이지요.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 유혹에 빠져들곤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하면서 장상의 말을 근거로 따지고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말씀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악한 의도에서 비롯하는 것이지요. 성경 말씀을 근거로 타인과 다투고 싸우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스스로를 지혜있는 자로 생각하겠지만 실은 아주 고약한 부류라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교묘한 유혹 앞에서 더 큰 지혜, 즉 아버지를 향한 존경과 사랑 속에서 또다른 말씀으로 그 유혹을 이겨냅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결국 악마를 이겨내지요.
악마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다음 기회를 노릴 뿐이었지요. 더 나은 계략으로 다가오려고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악마의 계략은 그렇게 도를 더해가는 법입니다. 우리도 준비하지 않으면, 즉 예수님이 지녔던 성령과 그분의 지혜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유혹에 넘어가게 되고 죄를 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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