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경험하고 나서 그것이 좋은 경험이었다면 그에 대한 애착이 남게 됩니다. 이는 마치 어느 관광지를 여행했을 때에 당시의 기억이 너무나 좋게 남아서 그것에 대해서 애착을 품고 다시 가고 싶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헌데 막상 다시 가보면 그 전에 느꼈던 그 기분이 살지 않아 실망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고 나면 애착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술이라든가 담배라든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애착으로 이끌어 들이고 심한 경우에는 중독에 이르게 합니다. 사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이고 분위기인데 언제나 그러한 것을 찾다가 술과 담배에 익숙해지고나면 육신이 그 방향으로 형성되어 버려 중독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 그 애착에서 벗어나는 것은 상당한 용기와 결심, 그리고 실천을 필요로 합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영혼의 애착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서 그것을 즐기고 그것에 애착을 품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사람은 자신의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실은 증오하기를 다른 것보다 즐기고 있는 셈입니다. 실컷 증오를 하고 나면, 상대에게 똑같은 괴로움을 주고 나면 만족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 언제나 그 경향을 내면으로 품고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갖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맛을 들이고 나면 그 뒤에는 다른 세상적 쾌락을 내어 놓아도 별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고독을 찾고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즐기게 됩니다. 거룩함과 선함과 진리를 즐기게 되지요.
우리가 회개를 한다고 할 때에 순간적으로 우리가 잘못한 것을 뉘우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애착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사랑하는 경향, 죄를 즐기는 경향에서 벗어나 선을 즐기는 경향으로 이르러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애착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단순히 어떻게든 순간을 모면하는 식의 고해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어둠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배고픈 고양이 앞에 생선을 두면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어디에나 유혹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죄를 사랑하는 경향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유혹 앞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안에 선을 향하는 경향을 구축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사탄의 먹잇감이 되고 맙니다.
회개는 중요한 일이지만, 진정한 회개는 바로 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애착을 하느님을 향해서 돌려 놓을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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