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습니다. 전면으로 보이는 것과 뒤에 숨은 것이 있지요. 역사에도 언제나 정사(正史)와 야사(野史)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실제 이야기는 정사보다는 야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요. 누군가 영웅적으로 사람을 구했는데 알고보니 등떠밀려 나갔다는 식입니다.
인간의 행위에는 언제나 그 내면에 숨은 동기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특히나 신앙에 관해서는 전혀 엉뚱한 전개가 펼쳐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열심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동기가 있는 사람들이 있지요.
하느님은 모든 것을 꿰뚫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 앞에는 모든 것이 정사가 됩니다. 숨은 이야기까지 다 합해서 정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분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인간을 바라보십니다. 그러면서 연민을 지니시지요.
차라리 자신을 악하다고 하면 솔직하기나 할지 모릅니다. 인간이 가장 추악할 때는 악한 의도를 잔뜩 품고 있으면서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내세울 때입니다. 겉으로 선한 척을 하면서 실제로는 상대를 험담하고 해칠 의도가 가득한 사람들이 간혹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하느님에게 희망을 걸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은 불의한 고통을 잊으시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불의로 우리가 부당한 고통을 당할 때에도 우리는 악에 기울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가 악하다고 우리도 악해지라는 법은 없습니다. 상대의 악에도 언제나 선한 의도와 선한 방법으로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험난한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인내가 됩니다. 인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어떤 덕목도 인내를 바탕으로 길러지게 됩니다. 힘든 일이 닥칠 때에 인내를 기르는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이가 더욱 더 많은 은총의 수령자가 될 수 있도록 그에게 인내의 기회들을 허락하십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