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마르 7,6-7)
남미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내세웁니다. 왜냐하면 가톨릭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미사는 일 년에 한번 혹은 두 번 정도 나옵니다. 성지 주일이나 위령의 날 같이 문화적으로 중요한 행사에 빠지지 않지요. 그나마 나오면 다행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아예 한 발자국도 성당 안에 들여놓지 않습니다. 하느님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싶은데 친하지는 않은 경우이지요.
자신이 연예인과 잘 안다는 것을 으스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잘 알 수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몇다리 건너서 알고 있거나 아니면 실제로는 아무런 친분 관계가 없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 쪽에서는 어쩌다 한 번 만났고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그 연예인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지요. 그러나 그 연예인과의 친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연예인의 명성이 중요하고 필요할 뿐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에게서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 뽑아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바로 그런 이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요. 즉 입술로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부류들입니다. 이들은 사실 하느님이 누군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의 유명세는 즐기는 것이지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자비로워야 한다고 하지만 자비롭지는 않지요. 가난한 이를 도와야 한다고 하고서는 본인은 정작 도울 마음이 없습니다. 바로 위선자들이지요.
그들이 즐기는 것은 복잡한 규정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지식으로 습득할 수 있고 남들에게 그 지식을 드러내며 우쭐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육이 무엇인지, 독성죄가 무엇인지 등등의 호기심 거리들을 책으로만 배우고 그 본연의 뜻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들입니다.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않으면 금육이니 회를 먹으러 가고, 사제를 보이는 곳에서 물리적으로 건드리지는 않으면서 뒤에 가서는 그를 험담합니다.
금육은 절제와 인내를 수련하고 그렇게 남게 되는 것으로 보다 가난한 이를 떠올리고 돕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단순히 입에 고기를 넣지 않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계란은 먹어도 되느냐 아니냐, 우유는 소에게서 나온 것인데 먹어도 되느냐 아니냐 하는 질문은 정말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성죄는 신부를 물리적으로 건드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 사제의 일을 할 수 없게 제약을 가하기 시작할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함께 어울려 식사 하는 자리에서 자기도 모르게 하던 버릇으로 옆에 앉은 사제의 어깨를 한 번 쳤다고 그걸 독성죄인지 아닌지 묻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당시의 예를 들어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고 봉양하라고 하지만 그분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것들을 하느님께 드린다면서 드리기를 거절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곡해한 셈이지요. 그 하느님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계시니까요.
헛된 신앙에 빠져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마음은 멀리 떠나 있으면서 입술로만 하느님을 섬기는 부류들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