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라는 나라를 바라보면서 알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은 그 토양이 있고 거기에서 모든 것이 싹이 튼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볼리비아에 사제 성소가 없는 이유는 사제 성소의 모범을 보여줄 사제들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거룩한 사제들이 부족한 이유는 사제들이 나오는 토양이 많이 손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가정이 많이 무너져 있지요. 가정이 무너지게 된 이유는 어른들의 무책임함 때문입니다. 저마다 돈을 사랑하고 그 밖의 소중한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지요. 어른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사회 전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고 그 역사 안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에서도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순환고리 하나가 완성이 되는 것이 바로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서로서로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뭔가 하나는 바뀌어야지요.
그럼 누가 바꿀 것인가?
그래서 저는 저부터 시작하기로 합니다. 커다란 바위에 계란을 치는 격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관점으로 생각합니다. 거대한 토양에 씨앗을 심는 것이지요. 이 씨앗은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고 많은 이들이 그 나무 그늘에 쉬러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환경이 엉망이라고 투덜대기만 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쓰레기라도 하나 치워야지요.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은 이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 문제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합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라서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진리와 선과 사랑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이 진리와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어른들이 됩니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경쟁과 승리와 획득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지요. 과연 우리 어른들은 지금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고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요. 누군가 경쟁하고 정의에서 어긋나는 방법을 조금 써서라도 쟁취하고 이기려고 하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 자신들은 진정으로 하느님에게 합당한 길을 걷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같은 토양에서 모든 것이 자라나는 법입니다. 우리는 수확된 작물을 두고 투덜댈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라고 있는 토양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죽어 좋은 양분이 되면 토양은 바뀝니다. 하지만 그 어느 씨앗도 죽기를 거부하면 저마다의 씨앗은 그대로 남아있게 되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