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범은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보여주고 싶었던 방식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 식대로의 해석을 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데에 있습니다.
흰 종이는 그대로 희지만 검은 색안경을 끼고 보면 검은 색으로 보이고, 붉은 색안경을 끼고 보면 붉게 보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주관으로 해석하는 것은 필요불가결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런 해석 가운데 원래의 대상과 한참을 동떨어진 해석이 나오곤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오늘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뿌리가 깊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 중에서는 베드로에게서도 하나의 단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하여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예수님을 꾸중하려 하다가 도리어 ‘사탄’ 소리를 듣게 됩니다.
과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본모습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과연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성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그 진리의 성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하지요.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이어집니다. 그 성령은 과연 누구를 통해서 작용하는 것일까요?
성령은 바람처럼 불어오는 분이십니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요. 왜냐하면 성령은 곧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어디에 성령이 머무르지 않으실 지는 분명하지요. 더러운 곳에 소중한 손님을 모시는 일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손님은 가장 소중한 곳에 모시는 법입니다. 특히나 성령이시라면 우리 안의 가장 소중한 곳에 머무르실 것이 분명하고 우리는 그곳을 깨끗이 치워 두어야 합니다. 그곳은 바로 우리의 영혼입니다.
예수님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 것은 괜히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맑게 만들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머무르시지 않으며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답에도 여전히 의문은 존재할 것입니다. 성령이 맑은 마음 안에 머무르신다고 하는데 그럼 보다 구체적으로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인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성령만 계시면 누구의 말이든지 들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인지, 성령이 없으면 중요한 인물의 말도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인지 이런 저런 의문이 듭니다.
교회는 성령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에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 이어나간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공적으로 선언하는 모든 것은 성령의 흐름 안에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종파만 해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셨고 그 어떤 세력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베드로 사도로 이어져오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가 사랑을 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진정한 정통성에 대한 힌트는 그 교회가 하나로 일치하려고 늘 노력하는가 아닌가를 살펴보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교회를 세우셨고 보살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예수님이 늘 가르치신 바 대로 서로 배척하는 교회가 아니라 서로 ‘하나가 되는’ 교회일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표지가 될 것입니다.
이 일치된 교회는 한 목소리로 예수님의 진실한 모습을 고백합니다. 그 구성원들은 부족하고 나약하고 심지어는 죄까지 짓기도 하지만 전체 교회가 가는 방향은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결국 예수님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굳건한 것입니다. 집의 기초가 흔들려서야 집이 올바로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집의 장식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만 기초는 굳건해야 합니다. 함부로 바뀔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들다가는 결국 엇나간 길을 걷기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는 결국 예수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예수님에게 돌아가기에 각자는 너무나 무력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자녀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양들은 목자의 소리를 알고 목자는 양들을 알아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걸을 것이고 하느님에게 속한 이들을 자신의 품 안으로 불러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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