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 5,20)
사실 의로움의 단계라는 것은 참으로 내적인 것이기 때문에 도식화를 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
↑선이 되는 것, 내적인 덕목들을 시도함
⎮선을 향하기 위해 죄를 정화하려는 노력
⇣===========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의 영역
⎮외적으로, 율법상으로 죄가 되는 것을 하지 않음
↓내적으로 죄가 되는 것을 지향함
(죄)
즉 바리사이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있는 힘껏 죄가 되는 외적 행위들을 피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이 그들을 지켜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는 어둠을 향한 기질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율법에 적히지 않은 내적인 것들은 오히려 더 죄로 향해 기울어 있습니다. 시기, 탐욕, 증오와 같은 것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서 그들은 내적으로 그것을 열망하지만 외적인 율법에 사로잡혀 울며 겨자먹기로 그것을 피하고 있는 것이지요.
반면 하느님에게 나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외적으로 죄가 되는 행위를 피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내적으로 아예 죄를 향하는 경향 자체를 없애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선을 이루려고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외적으로 보면 그들은 부족함이 가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 상에 적힌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수많은 정결례와 안식일 규정은 어느 정도의 외적 경제적 기반이 없는 이상은 지킬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할 수 있지요.
예수님은 특히나 ‘증오’에 대해서 가르침을 전하십니다. 왜냐하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바로 그 오류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향해 마음껏 증오를 드러내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성전에는 예물을 바치고, 정결례도 거행하고, 안식일 규정도 꼬박꼬박 지키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참된 예물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며, 참된 정결례는 손을 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씻어야 하며, 참된 안식일은 외적인 일을 그만두는 것만이 아니라 내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할까요? 우리는 혹시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않고 회를 사먹으러 가고, 그러면서도 길가에서 만나는 가난한 이를 손쉽게 외면하고, 주일 미사는 꼬박꼬박 지키지만 그 날 가족 간의 평화를 도모하지는 않으며, 판공은 울며 겨자먹기로 보는데 그 외에는 절대로 고해소 근처에도 가지 않고, 겨우 간다는 것이 주일 미사를 빠지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와 바리사이들 간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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