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다니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인정하는 여러 프로그램들, 즉 성지 순례도 갈 수 있고 원하는 기도모임도 갈 수 있고, 성령 기도회도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보지 않으면 그 구체적인 분위기를 알 수 없는 것도 있을 수 있지요. 파스카 청년 성경 모임이나 꾸르실료 교육 같은 것은 직접 참여해 보기 전에는 그 분위기를 모를 수 있습니다.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옷과 장갑이 있듯이 여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정적인 것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활동적인 것을 좋아할 수 있지요. 수도회 피정에 가서 며칠동안 침묵을 하고 명상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성지 순례와 같이 구체적으로 활달하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에게 좋다고 하여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한다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지만 자신이 체험한 좋은 것을 얼마든지 다른 이들에게 ‘권유’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둘의 차이, 즉 그것이 강요인지 권유인지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지요. 상대는 단순히 권하는 것을 듣는 이는 강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미사에 가자고 권하는 엄마의 ‘권유’가 아들에게는 ‘강요’로 들릴 수도 있지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권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을 다 내팽개치고 좋다는 것만 찾아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일상적인 신앙생활을 꾸려 나가면서 부족하게 느끼는 부분을 교회 안에서 마련된 프로그램으로 채워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그리 탓할 일이 되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공공연히 반대하는 무언가에 참여하려 한다면 그것은 이웃사랑 안에서 그에게 적절히 충고해서 그렇게 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 안에는 사람을 속이는 이들이 있고 우리의 참된 신앙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인도하는 이들이 많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교회가 크게 문제시 삼지 않는 여러가지 신심 프로그램은 각자가 스스로를 분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기도회를 나가면서 가정을 소홀히 하고 자신이 돌보아야 할 것을 소홀히 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자신의 삶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그 밖의 신심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스스로 조절해 나갈 수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웃 형제 자매들이 도와 주어야 할 문제이고, 문제가 계속된다면 사목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요.
교회 안에는 여러가지 신심 프로그램이 아주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미지근한 신앙에 젖어 있는 이들은 자신의 신앙을 다지기 위해서 그런 프로그램 가운데에서 자신에게 좋은 것을 골라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에게 너무나 좋은 프로그램이 남들에게 다 똑같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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