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의 아들로 카인과 아벨이 있었고 카인이 아벨을 죽인 뒤에는 어떻게 인류가 지속될 수 있었나요? 아내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었지요?”
어제 성경 강의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그래서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러가지 ‘진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제가 지금 은색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하나의 진리입니다. 이는 세상적 진리이고 정직한 ‘정보’를 말하지요. 다른 표현으로 ‘사실’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제가 왜 지금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쓰는지에 대한 그 ‘의도’를 분별해내지는 못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유익한 글을 읽어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적고 있습니다. 이는 또다른 내적 진리이지요. 그러나 거짓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확한 정보를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난 일을 중요시하지요. 과학과 역사적 차원의 진리, 고고학이 밝혀내는 진리를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성경 안에서 등장하는 진리들은 그런 차원의 진리들이 아닙니다. 인간의 DNA가 어떻게 구성되고 현대 과학 기술이 어떻게 진보되고 있는가 하는 차원의 진리가 아니지요. 성경 안에서 말하는 진리는 인간의 내적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하느님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고 그 세상을 마음에 들어 하셨으며 그 가운데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어 임무를 부여하시고 사랑을 나누시려고 하셨으나 우리 인간이 그분을 실망시키고 어둠에 빠져든 흐름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달리 말해서 과학적 사실이나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과학에 치중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 온통 싸우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싸움은 하느님의 세력과 하느님에게서 벗어나려는 세력이 서로 맞부딪히는 싸움으로 분별을 해야지 그 싸움 자체의 역사적 진리를 파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로 우리가 지금 텔레비전을 켜서 광고를 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광고는 상품을 선전하고 ‘사실’을 전달합니다. 하지만 그 광고의 ‘의도’는 우리가 마음에도 없던 물건을 알게 되고 원하게 되어 그 물건을 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광고의 숨겨진 ‘진리’인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은 이런 진리가 밝혀지는 것을 곤란해 합니다. 그저 사람들이 세상적인 사실에만 치중하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콜라를 많이 마시면 당뇨에 걸리고 건강에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광고 안에서는 마치 콜라가 모든 즐거움의 원천인 양 광고를 해 댑니다. 그래서 내적 진리 안에서 그 광고는 온전히 ‘거짓’인 것입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성경을 조금 읽다가 실망하는 이유는 그들이 세상의 사실을 찾는 눈으로 성경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문이나 소설책을 읽는 마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실’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니라 ‘진리’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시기와 증오가 저지르는 악행과 하느님의 악인에 대한 보호를 읽어내어야지 거기에서 누가 누구의 아내이고 도대체 그 아내들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찾다가는 공연한 시간을 허비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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