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려 하지 않는 장님에게 빛과 색깔을 설명하는 것만큼 안타깝고 힘든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이지요. 마치 예수님이 사람들 한가운데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기는 커녕 시기하고 증오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눈으로는 빛을 보지만 마음으로는 선과 진리와 사랑과 거룩함을 보아야 하는데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지요.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그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존재만을 본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전혀 그럴 의도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그들의 시기가 영혼의 눈을 멀게 한 것이지요.
이러한 안타까운 일은 오늘날에도 여실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진정한 그리스도이고 구원자로서 원래의 위치에서 대접을 받고 계실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탐내고 시기하고 다투고 싸우고 하면서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철저히 무시합니다. 거의 예수님을 생각지 않고 설령 생각 하더라도 아주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생각을 하지요. 실제로 계신 분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도외시되어 있습니다.
신앙을 전하고 가르치는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눈 뜬 장님에게 빛을 전하려는 노력이지요. 그가 스스로 눈을 뜰 때까지 꾸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빛을 직접 보고 익숙해지고 즐길 수 있어야 하지요. 그 첫 시작은 눈을 뜨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작 이전 단계가 있으니 눈을 뜰 때까지 꾸준히 빛을 비추어 주는 것이지요. 그 빛이 촛불이든 등잔이든 꾸준히 빛을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꾸준히 빛으로 남아있는 것, 거친 풍파 속에서도 빛을 꺼뜨리지 않고, 설령 꺼지더라도 다시 빛의 원천이신 주님께로 다가가 그 빛을 살리는 것, 그리고 아낌없이 가진 빛을 나누어 주는 것. 그러한 선작업이 있을 때에 그 빛을 받는 이가 비로소 자신의 의지로 눈을 뜰 수 있게 되고, 그리고 눈을 떴을 때에 빛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