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가난한 선교지에 있지만 제가 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소위 말하는 ‘품위’를 유지할 정도의 돈은 지니고 있습니다. 즉 해진 옷을 입거나 어디 가서 ‘구걸’하면서 손을 내밀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지만 누군가가 무엇을 내어줄 때에 저는 기쁘게 받습니다. 그렇게 받은 것이 저와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필요하기도 해서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렇게 내어주는 이에게 아주 소중한 체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부유하면 도울 일이 없게 됩니다. 내가 지금 붕어빵을 먹고 있는데 그걸 나누고 싶다고 주변을 둘러보면 주변에서는 황금 잉어빵을 먹고 있으니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수용’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가난한 선교지에서 온 선교 사제는 가진 것을 베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실천하는 이는 생각 외로 드뭅니다. ‘나눔’에 있어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터라 기회가 있어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삶을 지켜보면 됩니다. 나눔을 실천할 좋은 기회가 와도 그 순간 손이 움츠러드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여인을 비난한 유다의 모습은 우리에게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낭비되는 것을 보면 가난한 이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가난한 이를 만나면 나 자신의 무엇을 꺼내서 돕고 싶지는 않은 것이지요. 참으로 묘한 아이러니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눌 줄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사탕을 두개 받으면 그 반을 떼어서 저에게 내밀기 때문입니다. 그 사탕을 받아먹는 저로서는 마치 엄청난 부자가 된 기분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무엇을 내어줄 때에 저는 기쁘게 받습니다. 그렇게 받은 것이 저와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필요하기도 해서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렇게 내어주는 이에게 아주 소중한 체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부유하면 도울 일이 없게 됩니다. 내가 지금 붕어빵을 먹고 있는데 그걸 나누고 싶다고 주변을 둘러보면 주변에서는 황금 잉어빵을 먹고 있으니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수용’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가난한 선교지에서 온 선교 사제는 가진 것을 베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실천하는 이는 생각 외로 드뭅니다. ‘나눔’에 있어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터라 기회가 있어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삶을 지켜보면 됩니다. 나눔을 실천할 좋은 기회가 와도 그 순간 손이 움츠러드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여인을 비난한 유다의 모습은 우리에게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낭비되는 것을 보면 가난한 이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가난한 이를 만나면 나 자신의 무엇을 꺼내서 돕고 싶지는 않은 것이지요. 참으로 묘한 아이러니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눌 줄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사탕을 두개 받으면 그 반을 떼어서 저에게 내밀기 때문입니다. 그 사탕을 받아먹는 저로서는 마치 엄청난 부자가 된 기분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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