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루카 4,21)
예수님은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해방 선포는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거나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미 이루어졌다고 하시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계획한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계획의 실체가 이미 ‘예수님’이라는 분을 통해서 드러났기에 하느님의 약속은 이미 이루어진 셈입니다. 그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미 모두 이루어졌으니 더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일까요?
아직 남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응답’이지요. ‘부르심’은 이루어졌지만 ‘응답’이 남은 셈입니다. 그러나 응답을 하건 하지 않건 하느님의 말씀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고 취소되거나 무효화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응답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이루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완성에 참여하는가 아닌가의 선택일 뿐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일에 동참하는 이가 되던가 아니면 그와 반대로 머물던가 하는 것이지요.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아무리 이루어진 일에 반대를 하더라도 이루어진 일은 완성에 다다른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전능으로 어떻게든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완성에 동참할 기회를 마련해 주시는 것이지요. 즉, 그분의 부르심은 우리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거론하는 일의 심각성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주저하고 응답을 뒤로 자꾸 미루려고 합니다.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여전히 세상 일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조금만 더 쾌락에 몸담고 난 뒤에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아직 세상은 나에게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이득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선택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때가 되면 완성될 그 말씀은 응답이 필요하고 이미 응답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정반대일 것입니다. 응답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이들이 자리에서 내쳐질 것이고, 반대로 전혀 엉뚱한 곳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머뭇거림이 하느님에게 하등의 하자가 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우리의 머뭇거림은 오직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일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해방 선포는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거나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미 이루어졌다고 하시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계획한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계획의 실체가 이미 ‘예수님’이라는 분을 통해서 드러났기에 하느님의 약속은 이미 이루어진 셈입니다. 그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미 모두 이루어졌으니 더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일까요?
아직 남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응답’이지요. ‘부르심’은 이루어졌지만 ‘응답’이 남은 셈입니다. 그러나 응답을 하건 하지 않건 하느님의 말씀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고 취소되거나 무효화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응답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이루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완성에 참여하는가 아닌가의 선택일 뿐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일에 동참하는 이가 되던가 아니면 그와 반대로 머물던가 하는 것이지요.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아무리 이루어진 일에 반대를 하더라도 이루어진 일은 완성에 다다른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전능으로 어떻게든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완성에 동참할 기회를 마련해 주시는 것이지요. 즉, 그분의 부르심은 우리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거론하는 일의 심각성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주저하고 응답을 뒤로 자꾸 미루려고 합니다.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여전히 세상 일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조금만 더 쾌락에 몸담고 난 뒤에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아직 세상은 나에게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이득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선택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때가 되면 완성될 그 말씀은 응답이 필요하고 이미 응답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정반대일 것입니다. 응답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이들이 자리에서 내쳐질 것이고, 반대로 전혀 엉뚱한 곳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머뭇거림이 하느님에게 하등의 하자가 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우리의 머뭇거림은 오직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일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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