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가톨릭 대학 병원에 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거기 계신 신부님과 같이 여행을 다닌 적이 있어서 신부님께서 저를 많이 아껴 주시기 때문이지요. 병원 건물이 그 사이에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전에는 성당이 다른 건물 6층인가에 있었는데 어느새 위치가 바뀌어 지하실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 했지요. 제의방을 둘러보고 시간이 되어 미사를 집전하는데 어찌나 고요하고 정갈하고 질서가 있던지 어색해서 혼났습니다. 모인 분들이 대부분 환자분들이라 일종의 간절함도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미사를 마치면서 주례 신부님이 한 마디 인사를 드리라고 해서 쭈볏쭈볏 독서대로 갔습니다.
“찬미예수님. 반갑습니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적응하는 중입니다. 감기에 걸려서 저도 여러분들처럼 환자입니다.(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별로 반응은 없었습니다. ㅋ) 환자분들 여러 병환으로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그런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또 하느님이 가장 먼저 돌볼 이들은 바로 여러분들이니 우리의 신앙 안에서 거기에 희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저런 군더더기 말들을 더 했지만 대충 이렇게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래도 첫 주일을 한국에서 나름 사랑이 필요한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미사를 마치고는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동기 신부님 누님도 만나고, 이런 저런 지인들을 마주할 수 있었지요. 자몽차도 얻어 마셨습니다.
사실 우리 동네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마땅한 의료 혜택이 없어서 아파도 그냥 참고 살거나 심하게 아프면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이들이지요. 하지만 장단은 다 있으니 우리 동네 사람들은 적어도 죽음이라는 것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죽음에 보다 친근한 분위기이지요. 반면 한국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다가 갑자기 일이 터지면 크게 상심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일상 안에서 중환자를 볼 수가 없지요. 병원에나 와야 정말 아픈 사람들이 즐비하고, 일상 안에서는 그런 인간의 나약함들은 철저히 가리워져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특별한 다큐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끙끙 앓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여주는 일은 굉장히 드물지요. 보다 더 젊고, 건강함을 추구하는 모습들을 잔뜩 보여줍니다. 모든 광고는 생기 발랄하고 프로그램들은 생의 의욕을 고취시켜 주지요.
하지만 죽음은 우리 곁에 동반자처럼 늘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는 껴안아야 할 대상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미 죽음과 보다 친숙한 편에 속합니다. 그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미사를 마치면서 주례 신부님이 한 마디 인사를 드리라고 해서 쭈볏쭈볏 독서대로 갔습니다.
“찬미예수님. 반갑습니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적응하는 중입니다. 감기에 걸려서 저도 여러분들처럼 환자입니다.(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별로 반응은 없었습니다. ㅋ) 환자분들 여러 병환으로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그런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또 하느님이 가장 먼저 돌볼 이들은 바로 여러분들이니 우리의 신앙 안에서 거기에 희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저런 군더더기 말들을 더 했지만 대충 이렇게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래도 첫 주일을 한국에서 나름 사랑이 필요한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미사를 마치고는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동기 신부님 누님도 만나고, 이런 저런 지인들을 마주할 수 있었지요. 자몽차도 얻어 마셨습니다.
사실 우리 동네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마땅한 의료 혜택이 없어서 아파도 그냥 참고 살거나 심하게 아프면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이들이지요. 하지만 장단은 다 있으니 우리 동네 사람들은 적어도 죽음이라는 것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죽음에 보다 친근한 분위기이지요. 반면 한국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다가 갑자기 일이 터지면 크게 상심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일상 안에서 중환자를 볼 수가 없지요. 병원에나 와야 정말 아픈 사람들이 즐비하고, 일상 안에서는 그런 인간의 나약함들은 철저히 가리워져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특별한 다큐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끙끙 앓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여주는 일은 굉장히 드물지요. 보다 더 젊고, 건강함을 추구하는 모습들을 잔뜩 보여줍니다. 모든 광고는 생기 발랄하고 프로그램들은 생의 의욕을 고취시켜 주지요.
하지만 죽음은 우리 곁에 동반자처럼 늘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는 껴안아야 할 대상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미 죽음과 보다 친숙한 편에 속합니다. 그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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