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마태 21,23)
교회가 저에게 준 권한은 가르치고(예언직), 거룩한 전례와 성사를 집전하고(사제직), 신자들을 사목하고, 본당을 관리하는(왕직/봉사직) 권한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칩니다. 기본적으로 본당 신자들을 가르치고 기회가 되면 인터넷으로도 가르칩니다. 그리고 거룩한 전례와 성사를 집전하는 데에 성실합니다. 주일과 의무축일을 거르지 않고, 일상적인 전례도 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을 위해서 봉사합니다. 달라는 것을 주고 꾸려는 것을 물리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올바른 분별 속에서 실천합니다.
저에게 이 권한을 준 교회의 권한은 그 교회를 이루신 분에게서 나옵니다. 우리의 주님은 단 하나의 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가 갈라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의 보편성을 지녀야 합니다.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는 이가 저곳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고, 모든 교리적 가르침이 일치하며 하나의 공통된 수장(베드로의 수위권) 아래 모인 교회로서 저는 가톨릭 교회를 신뢰하고 그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지만 제자들 각자는 저마다 사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제자단은 언제나 거룩한 방향을 모색해 왔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의 몸이 때로는 열이 나기도 하고, 지체마다 아프기도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같은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서로를 보듬어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그 시대적인 흐름 안에서 때로 아프기도 하고 병들기도 했지만 그 궁극적 방향은 변하지 않고 거룩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가톨릭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특성을 유지합니다.
예수님의 권한은 하느님에게서 비롯합니다. 하느님의 선과 사랑에서 당신의 외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지요. 물론 이를 의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유명한 예언자들 중의 한 명, 위대한 인물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요.
결국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그 어느 것에도 기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존재의 뿌리마저도 의심스러울 테니까요. 실제로 그 존재의 근원을 찾아서 사유를 진행한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구축한 학문을 철학에서는 ‘존재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이루셨고 그분의 선과 사랑으로 우리를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권한을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타락으로(지금도 여지없이 계속되고 있는 그 타락으로) 세상은 자신에게 주어진 합당한 권위를 상실했고 하느님은 이런 우리들을 위해서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시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복권해주고자 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외아들을 믿는 이면 누구나 하느님에게서 받은 권한을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 예수님 - 사도단 - 교회로 이어지는 이 권위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하느님의 자녀’라고 고백하고 하느님의 뜻을 이어받아 살아갑니다. 진리의 목소리를 듣고 실천하는 이는 알게 될 것이고, 듣기도 거부하고 실천하기도 거부하는 이들은 저마다의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다른 길이 있다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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