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방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교는 신앙의 문제입니다. 신앙이 뜨겁게 타오르면 선교의 열정은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고, 그에 해당하는 그 어떤 수단이라고 강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순입니다.
선교는 장작불의 뜨거운 열기가 자연스레 주변에 전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장작불이 뜨거울수록 그 열기는 주변으로 전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에는 열기를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주변에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다 하더라도 장작불의 뜨거운 열기는 그것을 데워 뜨겁게 만들고 하다못해 그것에서 전해지는 열기라도 주변에 흩뿌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오르는 불이었고 우리는 그 불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선교라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바로 나의 신앙의 측정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좋은 것을 주변에 전하는 사람이야말로 내가 가진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지요. 반대로 내가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내가 가진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셈입니다.
저는 세상 소식에 열을 올리고 그것을 전하는 적지 않은 신앙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연예인들이 누가누가 있고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와 같은 내용을 아무런 막힘 없이 말하는 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을 올바르게 따르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세상의 기사거리를 이야기할 때에는 두 눈을 반짝이지만 하느님에 관해서는 벙어리가 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올려지는 글만 보아도 세상의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 정치, 미모, 처세술과 같은 온갖 글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진정 사람에게 올바른 길을 전하는 글들을 만나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선교의 본질인 이 신앙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다른 것으로 자신의 초라한 신앙을 메꾸어보려고 합니다. 특히나 그가 선교사일 때에는 정말 엉뚱한 일을 시작하곤 합니다. 그때 그 선교사는 정말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선교지에 보낸 장상의 마음에 들 만한 무언가, 즉 그에게 드러내고 보고할 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내세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외적 건물을 짓기 시작하고 외적 행사에 열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결국 그러한 것들을 사랑하는 이들을 끌어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된 선교를 하는 사람은 울면서 씨를 뿌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씨앗이 싹이 틀 때까지는 수고를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훗날 우리가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게 될 때에, 우리의 양 손에는 그 동안에 한 일들이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씨앗을 심은 이들의 수호천사들이 나서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느님 앞에 증언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내가 담당하는 영혼에게 씨앗을 뿌린 사람입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에 합당한 사람입니다.’라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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