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마르 16,17-18)
실제로도 일어나고, 또 은유적으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그러한 일들을 행하셨고 또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행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소경을 고쳐주신 것은 그 사람의 육체적 시력을 회복한다는 단순한 목적보다는 그 치유의 과정을 지켜보는 이들의 영적 시력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은 고해성사 안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마귀들은 악한 영들이고 인간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합니다. 그래서 잘 준비된 고해성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 안에서 속삭이는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스스로 그 마귀를 다시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나아가 구체적으로 활동하는 마귀들, 즉 사람들을 위협하고 겁을 주고 가련한 영혼에 깃들어 그의 말과 행동을 180도 뒤바꾸는 그런 종류의 마귀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영화에서 나오는 식의 그런 스펙터클한 장면이 아니더라도 마귀에 사로잡힌 이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예수님의 권능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한 일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믿는 이들’이지요.
새로운 언어라는 것은 우리가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언어를 말합니다. 이는 스페인어나 러시아어가 아니라 새로운 내면의 언어, 즉 사랑의 언어를 말합니다. 사람은 굳이 말을 해야 알아듣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드러내는 삶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로 작용을 합니다. 선한 의지, 사랑하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행동들은 사랑의 언어로 작용을 합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 새로운 언어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지 못하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언어’, 즉 자신의 이기성에 기반한 언어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랑도 계산해서 합니다. 하지만 믿는 이들은 하느님을 기반으로 한 언어를 말하기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무한한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내어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손으로 뱀을 잡고 독을 마신다는 것은 진짜 뱀을 잡을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우리의 실생활에서 진짜 뱀을 잡을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뱀이라는 것은 첫 인간을 유혹한 존재, 즉 사탄을 상징하고 그의 독은 그가 지닌 증오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말은 사탄을 만나서 그의 증오를 흡입하라는 말인가 싶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굳이 그들을 찾아 나서서 일부러 그들의 증오를 빨아당기지 않더라도 그들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앉아 우리 뒷꿈치를 물려고 준비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에게는 그들을 손으로 잡고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는 능력이 생겨나게 됩니다. 언제나 온유와 사랑으로 모든 이를 대하기 때문에 뱀을 손으로 잡아도 뱀이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우리를 물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며, 그들의 증오의 독이 우리 가까이에 와서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이들은 언제나 정직하고 성실하며 사랑이 가득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자들은 일상생활 안에서도 넘쳐납니다. 그들의 병이라는 것은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지가 찢어지지 않는 이상은 대부분 내면에서 서서히 준비되고 시작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병의 실제적인 원인을 단순히 육체적인 요소에서만 찾습니다. 음식에서, 음료에서, 생활 환경에서 병의 원인을 찾고 그것만을 없애면 된다고 착각하곤 하지요. 하지만 실제로 병이라는 것은 우리의 그릇된 생활 습관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더 많고 나아가서 그 그릇된 생활 습관은 우리의 영혼의 상태에서 기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늘 양심의 가책을 달고 살고 그 가책을 없앨 방법을 강구하고 결국 그 방법으로 술과 여러가지 놀잇감을 찾는 것이지요. 건강한 여가보다는 부적절한 것들로 자신의 육신을 몰아붙이니 결국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우선적으로 치유되어야 할 것은 그들의 육신의 병이 아니라 영혼의 병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올바른 길을 가르쳐 내면을 변화시키고 결국 그들이 이유도 모른 채 앓아오던 많은 병들마저도 치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예수님이 행하신 것처럼 실제적인 치유의 은사를 받기도 하고 그 치유의 은사로 사람들을 돕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러한 모든 치유의 근본에는 받아들이는 이의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병이 나으면 죄를 더 지을 사람을 하느님이 낫게 할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믿는 이들의 표징을 살펴 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위의 모든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게 됩니다. 이미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으며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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