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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사람들은 영성생활에서 이런 저런 주제들에 탐닉하지만 실제로 가장 중요한 주제를 놓치고 살아가곤 합니다. 그것은 바로 ‘가정’입니다. 우리의 모든 영성의 근본은 ‘가정’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가정은 모든 것의 뿌리이고 근본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올바로 서 있으면 우리의 영성생활도 올바로 서 있다고 보면 됩니다. 반대로 가정이 무너져 있으면 우리가 아무리 신학을 공부하고 영성서적을 읽는다고 해도 전혀 나아질 수가 없는 셈입니다.

사실 때로는 그런 신심행위들이나 배움의 기회를 ‘가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취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최고의 신심을 함양할 기회, 최고의 내적 배움의 기회를 벗어나 그저 형식적이고 학적으로 그것을 메꾸려고 하니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배우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지요.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는 다양한 역할들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가정의 생존을 책임지고 대외적인 면을 담당하는 권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내를 사랑하는 아버지와, 가정의 내적 화합을 도모하고 구성원들의 보살핌을 담당하며 가장을 존경하는 어머니, 삶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지니고 손주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순수하고 맑은 마음과 저마다의 특징으로 가정 안에 웃음과 기쁨이 넘치게 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모습을 올바르게 간직하는 가정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부도덕함으로 자신을 내던지고, 어머니는 집안의 군주가 되어 모든 것을 조정하고 자녀들에게서 아버지를 향한 존경을 사라지게 만들고, 조부모는 실버타운 신세로 전락하고, 자녀들은 엄청난 부담감으로 학업의 시종이 되곤 하지요. 그리고 소소한 다툼과 싸움이 끊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다투고, 자녀들은 부모와 다투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장모는 사위와 서로서로 반목하고 불화하는 일들이 아주 작은 불꽃 하나로 일파만파 번져 나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우리의 교회에 올바른 영을 지닌 목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 각 지체가 저마다의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것 처럼 한 가정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에는 ‘신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요. 참된 믿음은 한 가정을 일치로 이끄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누가 저녁에 모여서 가정기도를 할까요. 소위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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