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 인사를 자주 듣습니다. 모든 강복, 축복의 순간마다 사제는 이 말을 반복하지요. 그러면 신자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응답합니다. 스페인어로는 ‘Y con tu espíritu’(또한 그대의 영과 함께)라고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스페인어 버전이 더 친근하고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성모님이 천사의 방문을 받았을 때에 들었던 인사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28)
성모님이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재화나, 유명세, 권력이나 출중한 미모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은총 때문이고, 그 은총을 설명하는 말이 바로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사제로부터 곧잘 듣는 말이지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제는 술을 진탕 먹고 주사를 부리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축복을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이 인사를 하지요. 그러면 그들에게 합당한 은총이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개념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소홀히 생각하고 맙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바로 곁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신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좀 더 마음을 가다듬고 행여 그분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처신에 조심을 하겠지요. 헌데 한 인간 존재 앞에서 그런 다른 자세를 보일 우리들이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경우에는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평소에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심지어는 거룩한 성찬례 안에서도 주님보다는 다른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억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아쉬울 때’입니다. 뭔가가 필요하고 조급해질 때, 건강을 크게 잃거나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보고 안락함을 잃게 될 처지가 되면 우리는 그제서야 주님을 떠올리고 애원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자비로우신 주님은 그때라도 우리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불쌍한 우리들을 돌보시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우리들이지요. 우리는 그 순간 청을 드리지만 여전히 믿지 않으며, 여전히 불신하고 하느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상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움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에게 파고들고자 하지만 결국 우리 스스로가 다시 그 도움을 거절해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 자체로 축복이 되지요.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그의 마음은 고요합니다. 주님과 함께 머무르십시오. 그 밖의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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