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 선교 첫날 - 화요일
첫영성체 교리교사 회장 남편이 운전을 해서 오후 느지막히 공소에 도착을 했다. 아주 조용한 공간을 기대했는데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공소 마당에 아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음악에 맞추어 춤연습을 하고 있었다. 목요일에 성탄 관련한 행사가 있는데 그 연습을 하는 거라고 했다. 내가 숙소로 쓸 방에서는 엠빠나다(남미식 튀김 치즈 공갈빵)를 만들고 있었고 방안은 후끈거렸다.
방안에 짐을 두고는 책 한 권을 들고 밖으로 나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나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인사를 했고 세례에 관해서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성심껏 대답해주고 다시 책에 몰두하려는데 간식 거리를 만들었다며 아까 만든 엠빠나다를 먹으라고 나를 초대했다. 식탁에 앉아서 엠빠나다를 먹는데 세례 대상자 부모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얼른 남은 커피를 마시고 공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교리를 시작했다.
한 시간 남짓의 교리가 끝난 후에도 질문 공세는 이어졌다. 혼배에 관해서, 대부에 관해서 이런 저런 질문들을 해 대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와서 내일 9시부터 와서 교리를 들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교리교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오라고 했다. 공소 교리교사 한 명이 와서 식사는 어쩔 거냐고 묻길래 그냥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점심은 주면 먹고 저녁은 거의 안먹는다고 했다. 혹시 가능하다면 요구르트와 바나나 하나를 준비해주면 내일 아침 대신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다들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도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앉아 컴퓨터를 열고 글을 쓰는 중이다. 벌레가 은근히 많다. 모기 쫓는 약을 사 오긴 했지만 거의 무용지물이다. 밤 사이에 아마 모기의 엄청난 공격을 받을 것 같다. 하나 다행인 것은 크게 덥지는 않다는 거다. 벌써부터 귓가에 모기가 앵앵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겨우 일곱시 반인데 아마 밤새도록 벌레들에게 시달리는 것은 아닐런지. 해가 진 동안 일찍 잠들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겠다. 헌데 주변에 어느 집에서 음악을 아주 크게 틀어놓았다. 시골의 침묵을 예상하고 왔는데, 그냥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목마른 영혼들에게 물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위안이나 삼는 수 밖에.
방금 한 청년이 들어와 요구르트를 놓고 간다. 활짝 웃는 얼굴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제 또 누가 찾아 올려나? 아니면 책이나 좀 읽다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공소 선교 둘째날 - 수요일
근처 집의 음악은 새벽 1시 넘어까지 계속되었다. 심장을 울리는 웅장한 베이스 사운드 덕분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거기에 모기들까지 합세를 했다. 해충 차단 스프레이를 뿌렸는데도 달려드는 녀석들 때문에 온 몸을 긁적여야 했다. 결국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시 일어나서 공소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 소리의 근원지는 공소 바로 옆에 있는 주점이었다. 주점이랄 것도 없는 곳이었는데 술을 팔고 있었고 커다란 주크박스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엄청난 소리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방에 들어오는데 벽에 전갈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문득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루카 10,19)
그래서 말씀에 순명하여 신발을 벗어들고 전갈을 내리쳤다. 밟아야 했으니까.
다시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 하느님께서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시원한 바람과 비를 내려주셨다. 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나는 이내 잠이 들 수가 있었다.
헌데 지나치게 시원했다. 얇은 점퍼 하나 준비해 오지 않은 나로서는 얇은 티셔츠 하나로는 조금은 견디기 힘든 추위였다. 인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간사한 존재구나 싶었다. 그렇게 시원하기를 바라다가 막상 시원해지니 다시 따뜻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이 추위에 벌레들이 더는 달려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벌레가 나을지 추위가 나을지 알 수 없었지만 결국 나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새벽에 일어났다. 새벽 5시. 수탉을 포함한 새들이 얼마나 힘차게 울어대는지 모른다. 하느님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고 가져온 시리얼에 어제 받은 요구르트를 섞어 먹고 샤워를 했다.
비가 오고 있다. 비가 많이 오면 길이 나빠져서 내가 돌아갈 길이 막히는데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뭔가가 당신이 필요한 것이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교리를 배우러 오기로 한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으니 조용히 책이나 좀 읽어야 할 것 같다.
침대 머리맡에 커다란 시계가 있어 째깍거리는 소리가 심히 거슬리기에 건전지를 빼 버렸다. 책을 좀 읽다가 다시 잠시 잠을 청하는데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예시까와 에벨린이라는 두 소녀가 내 아침상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비스켓과 주스와 요구르트와 바나나. 다른 건 손대지 못하고 바나나 한 조각과 비스켓 두 조각, 요구르트 하나를 먹었다. 그러면서 어제 모기떼의 공격과 옆의 술집의 소음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하니 아이들이 말하기를 그 술집 주인도 이번에 자기 아이들 세 명의 세례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 저녁 세례 시간에 혼쭐을 내줘야겠다고 농담을 하니 다들 웃는다.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물론 새들은 끊임없이 노래하고 있고 닭들도 한껏 목청을 다해 아침의 시간을 찬미한다. 비오 신부님 성인전을 읽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공소 청소를 시작했다. 나는 방 안에 남아 계속 독서를 하다가 시간이 되어 어제 약속을 한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총 5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교리교사가 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신앙을 가지는 것이고 하느님을 믿는 것이며 스스로 겸손해지는 것이라는 바탕을 깔고 성경과 마르코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채 1장을 다 마치지도 못했는데 한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 나머지 부분은 오후에 다시 만나서 가르치기로 했다.
방에 다시 돌아와 읽던 책을 마저 읽다가 잠이 들었다.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보니 점심이 준비되어 있다면서 두 소녀가 나를 불렀다. 겉으로 보기에 어려 보일 뿐, 사실 애가 엄마들일 가능성이 높다. 오븐에 구운 닭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침 배가 고팠던 터라 너무나도 맛있게 먹고 그릇을 싹싹 비웠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멀찍이서 다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어제와는 다른 장소라 베이스 음만 들린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고 새들의 소리는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하다. 그리고 가끔씩 정신나간 수탉이 부르짖는 것도 여전하다.
오후 내내 책을 읽는데 한 무리의 자매들이 다가와서 ‘혼배’에 대해서 물었다. 궁금해 하는 점에 대해서 답변을 해 주다보니 어느새 젊은 친구들과 약속한 시간이 되어 가르치러 나갔다. 여자 아이들 몇몇이 와 있었다. 아침에 그친 부분부터 시작해서 성경을 가르쳤다. 그리고 짬나는 시간을 이용해서 고해성사를 주었다.
곧이어 두번째 세례 강좌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쳤다. 교리 중에 어제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잔 이야기를 했다. 교리가 끝나고 나머지 젊은 친구들이 고해성사를 보았고 사람들이 찾아와 세례 준비에 대해서 대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성실히 대답하는 중에 한 자매가 와서 저녁식사로 과일 샐러드를 준비했다면서 먹으라고 했다. 감사하며 먹었다. 저녁을 먹고도 사람들은 찾아왔고 PET병에 물을 준비해 와서 아기를 축복해 달라고 청하는 부부도 있었다. 그리고 한 쌍의 자매들이 와서 방 창문에 모기를 막기 위해서 커텐을 쳐도 되느냐고 하길래 얼른 고맙다고 하고 그렇게 해 달라고 청했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방에 들어왔는데 어제 그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그쳤다. 아마도 교리 중에 이야기한 것이 먹힌 모양이었다. 그리고 창문에 친 커텐과 방 안에 뿌린 모기약으로 모기도 상당히 줄었다. 하지만 벌레는 여전히 있어서 온 몸에 약으로 도배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잠깐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느님에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 오늘 하루 보살펴 주시고 아무런 부족함 없이 모두 채워 주시는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이렇게 둘째날이 지나가고 있다.
공소 선교 셋째날 - 목요일
아무런 소음이 없어 편안하게 잘 수 있던 밤이었다. 공소 앞 공원에서 아이들이 불꽃놀이를 하느라 폭죽 터지는 소리가 간간이 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새벽녘이면 날이 좀 차다. 속옷 말고는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않아 찬 기운을 덮을 만한 것이 없어서 일찍 잠을 깨었다. 그래도 어제 쳐 둔 커텐 덕분에 밤 사이 모기에게 시달리지 않아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저는 왕궁에 있습니다. 이 왕궁은 화려한 장식이나 보석으로 꾸며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꾸며졌지요. 작은 방은 벌레와 함께 써야 하지만 비를 막아주기에 충분합니다. 초라한 침대이지만 그 위에는 비록 여기 저기 흠이 있고 구멍이 나긴 했어도 깨끗이 세탁한 시트가 깔려 있고 거기에 모기가 들어와 잠을 설치게 할까 걱정을 해서 저마다 집에서 가져온 초라한 커튼을 달아 주었습니다. 제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매 끼니 때마다 나의 배고픔을 걱정해서 음식을 가져옵니다. 세상 그 어느 호텔의 고급 룸 서비스보다도 더 극진한 보살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밤 사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잠을 깨고, 아침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낮이면 따뜻한 햇살이 비춰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땀에 젖은 몸을 씻을 공간과 충분한 물도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외적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제가 외적으로 완벽한 휴식 공간을 찾았더라면 이곳에서 저는 매 순간 한탄을 하며 지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반대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조화로이 이루시고 저를 보살피시는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나은 무언가를 찾지만, 그것을 찾았다고 생각할 때에 언제나 거기에서 부족함을 찾아내고 그 때문에 기분나빠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사람들은 참된 가치를 맛볼 줄 모르기에 보다 소중한 것들을 너무나도 소홀히 하곤 합니다. 외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내적인 아름다움이 더 가치롭다는 것을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합니다. 얼굴만 번지르르한 여인네보다는 정숙하고 한 남자에게 헌신하며 봉사할 줄 아는 영혼을 가진 여인이 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간절히 원하지만 결국 얻은 것에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좀 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엇나간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오전 내내 책을 읽었다. 바람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밖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삶이 갈수록 단순해지고 있다. 더위가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은 견딜만 하다.
점심 때가 되어 차려주는 음식을 먹는데 음식을 가져온 자매가 묻는다. “혼자 자는 거 무섭지 않아요?” 그래서 “혼자 안자요.” 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고 바라본다. “하하하. 혼자가 아니에요. 성령과 함께지요.” 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웃는다.
오후 동안 또 책을 읽다가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가보니 본당에서 몇몇 사람들이 음료수를 사 들고 방문을 왔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제가 가지고 있던 비스켓을 꺼내 대접을 했다. 그리고 하느님과 우리 삶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에는 영적인 위험이 너무 많고 올바르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언제라도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잠깐의 만남을 끝내고 보내려는데 한 자매가 혹시 침대 시트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안그래도 새벽녘에 좀 추웠는데 하느님께서는 또 이렇게 나를 보살펴 주시는가보다.
저녁에는 다시 예비 교리교사들을 데리고 수업을 했고 이어 세례 교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일찌감치 씻고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누군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저녁식사를 준비해 왔다. 하느님에게 감사드리고 맛있게 먹고나니 비로소 하루가 지나간 느낌이 든다. 침대에 무릎꿇고 하느님에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별빛은 환하고 방은 낮의 열기로 아직도 후끈하다.
공소 선교 넷째날 - 금요일
아침은 늘 시원하다.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책을 읽었다. 모기 몇 마리가 간간이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것 외에는 참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이다.
오전에 아이들이 와서 컴퓨터로 미사의 의미에 대한 영상물을 보여주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팝콘 대신 내가 먹으려고 가져온 시리얼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었다.
점심 시간이 되어 성당 앞에 있는 가게에서 식사를 차려 주었다. 오리로 만든 마하디또 요리를 차린 식사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한 아저씨를 만났는데 참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미국에서 일을 했고 딸아이가 둘 있고, 7명의 여자를 거쳐갔다는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꺼내 놓았다. 모든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내 의견을 말한다고 설득될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았기에 그냥 묵묵히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그렇게 짧은 식사시간이 지나갔다. 다시 날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땀이 비오듯 줄줄 흐르고 있다.
샤워를 하고 바람이 조금 부는 공소 뒷 담벼락에 가서 책을 읽었다. 곧 아이들이 찾아왔고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을 마치면서 이제 마지막이라고 하니 아쉬워하면서 내일은 하지 않을 거냐고 묻는다. 그래서 그 바람을 저버릴 수 없어서 내일도 오전에 하자고 했다. 이어 다시 세례 강좌가 이어졌고 대부 대모들까지 합세한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세례가 끝나고 성사를 보려는 아이들과 질문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 부부는 요기를 하라고 바나나 두개, 사과 하나, 요구르트 두개와 우유 두 봉지를 가져다준다. 바나나와 사과와 우유를 먹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공소 선교 다섯째날 - 토요일
비가 온다. 덕분에 날이 시원하다. 일어나서 기도를 드리고 어제 남은 음식들을 먹고 샤워를 하고는 엊저녁에 받아둔 세례 관련 서류들을 정리해서 등록지에 옮겨 적는 작업을 했다. 작업을 하는 중에 한 자매가 와서 먹으라고 엠빠나다와 직접 갈아 만든 바나나 우유를 가져왔다. 이미 아침식사를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받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하는데 또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한 시간 일찍 와서 나를 찾는다. 아침식사를 준비했으니 와서 같이 먹자고 한다. 이로써 오늘 하루에 세 번이나 아침식사를 한 셈이다. 가서 준비한 닭고기 엠빠나다를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외적인 것에 휘둘리지 말고 내적인 가치를 소중히 하라고 했다. 나에게 대접한 이 음식의 내면에 숨은 ‘사랑’이라는 가치를 소중히 여길 줄 알라고 가르쳤다.
궁금한 게 있냐고 물으니 묵시록에 대한 걸 묻는다. 묵시록은 상징의 요약들이며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호기심으로 읽는 것은 위험하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궁금해 하는 부분을 내가 아는 선에서 해석을 해 주면서 먼저 성경의 다른 부분을 읽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를 했다. 그리고 어제에 이어서 복음 성경 강의를 시작했다.
한 시간 가량의 성경강의를 마치고 다시 돌아와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는데 한 자매가 찾아와서 근처에 앓아 누워있는 사람이 있는데 찾아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오후에 함께 가 보자고 했다.
남은 서류작업을 마치고 잠시 누워 쉬는데 아이들 둘이 찾아와서 나를 부르며 점심을 먹으라고 한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먹는 걸 지켜보지 않고 음식만 가져다 주고 가버렸다. 이미 배가 상당히 불러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먹고 나머지는 내 방 주변에서 지저귀는 새들과 서성이는 개들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할 수 있었고 충분히 쉴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보살피심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미사와 세례성사를 거룩하게 거행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새로이 다가오는 주일을 거룩하게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오후가 되어 병자 방문을 갔다. 아주 빼빼마른 할머니가 병석에 누워 있었다. 고해 성사를 드리려고 했지만 대화를 나누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서 임종 사면과 전대사를 주고 병자 성사를 거행하고 할머니 들으시라고 크게 외쳤다.
“하느님이 다 용서하셨어요. 걱정 마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울먹울먹 하신다.
돌아와서 짐정리를 했다. 짐이랄 것도 없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것들을 정돈했다. 이제 남은 건 미사와 세례성사다. 미사 시간 전까지 조용히 책을 읽다가 공소에 들어가서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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