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머물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예수님을 증오하는 이들도 상당했습니다. 자신의 이권을 침해 당했다고 생각한 이들, 예수님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한 이들은 예수님을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곱상하게 미사보를 쓰고 스테인레스 창으로 은은하게 햇살이 들어오는 한적한 성당에 앉아서 가만히 제대 위의 십자가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박해를 각오하는 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라면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갈 것이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 ‘박해’는 예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박해라는 것은 다른 세상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머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지를 받으리라 생각했던 이들에게서 박해를 받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들을 오해해 왔기 때문입니다. 즉, 지지를 받으리라 생각했던 이들의 내면에 실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반대로 저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진리를 찾아 한 걸음 더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를 박해하는 이에게 우리는 선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온유와 친절과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고 앙심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서 아무리 훈련되고 고도의 영적 수준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늘 내면으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지요.
만일 세상이 모두 하느님의 뜻대로 움직여졌다면 고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제 수명을 다하고 축복 속에 평안히 세상을 마감하고 영원으로 건너갔을 것입니다. 아니, 인류의 첫 조상이 죄가 없었더라면 인류에게는 죽음이 없었을 것입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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