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지요. 예수님은 반대받는 표징이 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람들의 숨은 속내를 드러내셨기 때문이었지요. 그들의 우중충하고 어두운 마음을 드러내었기에 사람들은 그분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한 단체 앞에서 단지 술을 함께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 만으로 배척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함께 모여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수근거릴 때에는 자신들과 함께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척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진리였고 사랑이었습니다. 거짓과 증오는 예수님을 기피하게 마련입니다.
돈 욕심이 잔뜩 있는데도 아닌 척을 하려면 참 여러가지로 가림막을 잘 쳐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행위를 찬양해야 하고 스스로를 거룩한 의인으로 드러내어야 하지요. 이런 저런 좋은 활동을 최대치로 말하고 실제로 자신이 드러내고 있는 어두움은 감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속일래야 속일 수가 없는 것은 바로 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는 셈이지요.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고의 선 가까이에 머무를 수 있는 자신의 자격을 스스로 내팽개치고 세상의 헛된 것을 쫓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현재를 올바로 바라보지도 못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분간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지요. 자신의 탐욕이 자신의 올바른 분별을 뛰어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냉혹하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세상은 순진하고 나약한 이를 바라보면 이용해 먹을 생각을 하지 절대로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만일 그랬었다면 지금 세상 도처의 가난은 존재하지 않았을테지요. 탐욕스런 이들은 자신들의 돈벌이를 할 생각을 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이용해 먹을 자신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힘들고 다치거나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셈입니다. 그들이 동정을 가지는 것도 자신과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있을 때 뿐입니다. 그 밖에는 세상에 천 명이 죽든, 이 천 명이 죽든 아무 상관 없이 잘 지냅니다.
사람들은 정말 예수님을 필요로 할까요? 정말 그분의 가르침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싶어 할까요? 그러나 이런 모든 의문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다시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고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건강한 이들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병자들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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