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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


사람들이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게 슬펐다.
의심하고, 추측하고, 험담하고, 중상하는 게 슬펐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영원한 행복을 꿈꾸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눈을 들어 영원의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영원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연계되어 있다.
그것을 ‘우정’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진실한 우정 안에서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진실한 우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우정의 가치를 알지 못했고,
저마다 ‘이해관계’를 구축해왔다.
필요에 의해서 사용하고 필요가 없으면 내던지는 그런 관계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진실로 사랑하는 관계
오직 그 안에서만 사람들은 함께 모여 살 수 있게 된다.
모두가 하느님을 향한 우선적이고 극진한 사랑으로 연결된 세상,
그곳을 ‘천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국의 존재를 믿지 못했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갈라져 자기만의 세상의 구축해 버렸다.
그곳이 바로 ‘지옥’인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세상의 고통은 잠시일 뿐이다.
심지어는 죽음도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원을 감지하지 못했고
지상의 모든 것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짓,
생이 다하고 나면 손에 쥘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쥐던 손을 놓고 떠나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알리고 가르쳐 보았지만
그들은 감사하고 받아들이기는 커녕
자신들의 악을 더해갔고
그들의 투쟁은 더욱 극심해져 갔다.

목마르다 하면서 물은 마시지 않고
배고프다 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으니
그들은 과연 무엇으로 만족할 것인가?

그러니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이다.
귀가 순한 백성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들을 찾아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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