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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피하기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마태 2,14-15)

한 사람이 악한 마음을 품으면 세상 끝까지 그 악을 이루기 위해서 돌아 다닙니다. 그리고 그 악을 온전히 이루고 나서야 안정을 얻지요. 헤로데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자신이 왕으로 엄연히 존재하는데 다른 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 지역 일대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여 버리고서야 비로소 안심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게 하고 나서도 안정은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악한 마음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은 상대를 해칠 준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아무리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악에 가득찬 사람을 만나면 그 모든 선이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게 됩니다. 일단 화가 난 아이에게는 사탕을 쥐어 주어도 그 사탕을 던져 버리고 마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악한 마음을 지닌 이를 만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온유와 친절로 가꾸어 놓아야 합니다. 악한 이들이 우리를 증오할 이유를 찾을 수 없도록 미리 조심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때로는 아무리 우리가 노력을 해도 소용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이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피난을 간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기다렸지요.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즉 한 사람이 선한 마음을 품으면 그 선을 온전히 이루고자 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드문 경우입니다. 그리고 선한 마음은 시간이 흐르면 곧잘 의욕을 잃고 사라지곤 합니다. 한 사람이 착하다는 것은 천성적으로 순한 성격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진정한 선한 의도는 끊임없는 의지의 결심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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