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1년 가까이 담당해 오던 한국 신자 모임을 마쳤습니다. 다음달부터는 사제들이 돌아가면서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 정말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특히나 제 모국어로 가르친 것이기 때문에 더 쉽고 편하게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제가 느낀 것은 정반대였습니다. 오히려 제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동네의 사람들이 그 순박한 마음으로 가르침을 더 잘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1시간이던 교리시간을 30분으로 줄이고, 자기 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리에 느지막히 오시는 분들 때문에 교리가 중간중간 끊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 동네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배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심지어는 제 휴일마저도 할애해서 가르침을 시작했습니다. 교리와 미사를 마치고 나면 한식을 먹을 수 있긴 했지만 어르신들의 걱정스러운 정치와 경제 이야기에 어린 저로서는 편안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는 한편 이 동네의 모임은 아주 소박한 치차 음료와 간단한 먹거리가 전부였지만 모두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를 다니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난한 이들을 차별적으로 사랑했다고 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초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가난한 이들이 득을 보게 된 것은 그들이 들을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자들은 예수님을 의심하고 시험하려 했고 떠보려고 했을 뿐 정말 진실되이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르침이 끝나고 나면 심지어는 그분을 해칠 생각까지도 하곤 했지요.
“저요. 나중에 한국 들어가면 여기가 정말 그리울 것 같아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은 제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정말 배우고 싶어하는 원의가 가득하거든요. 그 열정과 사랑이 그리워질 것 같아요.”
지난 토요일 시골 공소를 다녀오면서 함께 동행한 교리교사 자매들에게 한 이야기였습니다. 훗날 가려진 장막이 벗겨지게 되고 인간은 육신을 부여받기 이전의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영혼 안에 과연 무엇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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