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왕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던 소박한 가정에서 더군다나 마땅한 자리도 구하지 못해서 어느 외양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거룩하다’는 것은 ‘화려하다’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탄은 화려함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화려해졌을 뿐이지요. 사람들은 성탄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고 더 나은 소득을 얻을 아이템들을 만들다보니 성탄이 엄청 화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성탄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소박하고 겸손하고 초라하기까지 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 초라함 속에는 진정한 보물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신원이었고 그분의 거룩한 영이었지요. 그 값진 보물은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초라한 환경 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만이 그 보물을 찾아 얻게끔 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달리 생각하면 누구든지 그 보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만일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있었다면 가난하고 초라한 이들은 그에 다가설 수 없었을 테니까요.
부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난하고 초라한 곳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이 없어서 문제이지요. 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부유한 곳에 함부로 다가설 수 없습니다. 입구부터 막혀 있으니까요. 거지는 백화점에 입장하지 못합니다. 입구에서부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비원들에게 제지를 당하고 말겠지요. 그러나 부자들은 자기가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난한 곳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부자들을 평생에 겨우 몇 번 만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그 목적이 굉장히 의심스러운 이들이 적지 않았지요.
우리의 참된 왕의 탄생은 정말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초라함 속에서도 거룩함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당은 크고 화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 생각이 옳은 것일까요? 초라한 성당 안에서도 거룩함은 유지될 수 있고, 오히려 정반대로 그 초라함 속에서 진정한 거룩함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성탄에 진정으로 찾아야 할 것은 아기 예수님이지 산타클로스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탄의 본질적인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성탄은 가난과 겸손으로 다가오신 구세주를 새로이 발견하는 날이지 온갖 상업적 문구와 현란한 상품들에 휩싸여 살아가는 날이 아닙니다.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는 잘 꾸며진 구유 안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가난하고 겸손된 마음 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외에 바라는 것이 없는 ‘가난’, 참된 하느님 아버지 앞에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느끼는 ‘겸손’이야말로 우리가 성탄, 즉 거룩한 밤에 얻어 누리게 될 진정한 거룩함입니다. 성탄을 축하한다는 메세지는 바로 이런 의미로 서로에게 나누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즉, 당신의 마음 속에 가난과 겸손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모시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의미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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