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똥, 배설물이라는 것에 대해서 누구나 공감하는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그래서 ‘똥’은 누구나 꺼려하고 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아주 예쁜 포장 상자를 하나 구해서 그 똥을 그 안에 담고 절대로 냄새가 새어나지 않게 잘 묶어 길가에다 내어 놓았다고 생각을 해 봅시다. 사람들은 그 외면의 예쁜 포장을 바라보면서 그 똥에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포장을 열기까지는 절대로 그 내용물의 진실을 알 수 없겠지요. 그러다가 포장을 열면 그 상자에 다가서게 된 것을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마가 우리에게 하는 짓입니다. ‘죽음’을 ‘쾌락’이라는 포장지에 감싸서 내어놓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거기에 다가서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술을 진탕 퍼마시고 마약에 손대고 여러가지 범죄적인 행위에 다가서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쾌락’ 때문입니다. 그 아름다운 포장지에 혹해서 다가서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포장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든 것을 받아들이면 ‘죽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헌데 우리는 이 포장된 배설물들이 주로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리를 미리 알고 피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절대로 똥과 마주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화려한 포장지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가 스스로 거기에 다가서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끊임없이 구원하려고 하고, 심지어는 똥 묻은 우리의 옷을 빨아 주시기까지 합니다. 헌데 우리는 또 멍청하게 같은 오류를 반복할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육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나면 두 가지가 동시에 사라지게 됩니다. 한 편으로는 더 죄 지을 육신이 사라지게 되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가 속죄할 기회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영원한 상태에 접어들게 됩니다.
모쪼록 그 순간에 여전히 구원을 바라는 영혼의 상태를 지니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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