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사제이고 수도자인데도 신앙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는 참으로 세속적인 관심사가 됩니다. 자신이 하는 취미 활동이나 자신이 보는 드라마 이야기를 더 맛깔스럽게 하고 서로 관심있게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을 때로는 볼 수 있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없는 것을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내어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손에 쥔 것만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도 많은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내면에 가득 안고 있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남에게 내어주는 것이지요. 내면에 하느님에 대한 열정이 없고 세상 것을 향한 욕구가 가득한데 자신에게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할 도리는 없는 것입니다.
길 잃은 양들이 그럴 수는 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이끌지 않았거나 그들이 잘못된 길에 접어들어서 아직 빛을 올바로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요. 헌데 양들을 이끌어야 하는 직무를 맡은 이들, 오로지 주님 안에 봉헌된 삶을 살기로 다짐한 이들이 그러는 것은 분명한 직무유기입니다.
취미생활을 해서는 안되고 드라마를 보아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충분한 휴식을 누리기도 해야 하고 기분 전환을 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고 육신과 영혼이 지칠 때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지 원래 해야 할 일을 전혀 하지 않고 그것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원래 해야 하는 일을 형식적이고 사무적인 일로 바꿔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제와 수도자로서 우리가 원래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은 ‘성화’의 직무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보다 더 사랑하고 그분과 온전히 일치되어 있으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그 ‘거룩함’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단순히 사제로서 미사 경문을 읽는 것이나 수도자로서 때맞춰 성무일도를 바치러 경당에 들어가는 것으로 그 직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쉽지 않은 이유 때문에 우리는 결심을 굳혔고 하느님에게 우리를 내어 바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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