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찐득한 더러움이 엉겨붙은 옷이 새하얀 옷이 되는 과정과 비슷할 것입니다. 먼저는 더러움을 떼어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 더러움은 어느새 천의 올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어느 것이 더러움인지 어느 것이 원래의 천인지 구분하기 힘든 지경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능한 할 수 있는 데로 옷에 붙은 껌을 떼어내듯이 나의 영혼에 들러붙은 악습을 분별해내고 떼어내어야 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수많은 이들이 ‘실패’를 하고 포기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큰 덩어리를 떼어냈지만 옷에는 여전히 ‘자국’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국을 없애는 데에는 그저 우리 손의 힘으로 비비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그런 자국을 없애는 데에는 특별한 세제나 표백제가 필요한 법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더욱 순수함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가르침의 은총을 얻어야 합니다. 이 두 번째 단계 역시 수많은 이들이 ‘실패’하는 구간입니다.
비록 큰 얼룩이 없어졌다고 할지라도 옷이 완전히 새하얗게 되기 위해서는 늘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나 주변에는 내 옷을 얼룩지게 할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마지막 단계에 이른 영혼들은 더는 세상의 지저분한 요소들을 즐기지 않게 됩니다. 자신이 소중히 간직해 온 은총을 상실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는 당연히 짓지 않겠지만 죄로 이끌 요소들도 분별을 하고 점점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이 작업을 자신도 모르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선호도 안에는 이미 좋은 것, 사랑스러운 것, 희생하고 인내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잔뜩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게 거룩함을 이루는 이들이 세상과 완전 등지고 살아가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세상 안에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다만 예전에는 그들을 오염시키던 것들이 더는 그들을 오염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오직 하느님만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기 때문에 다른 헛된 것들이 전혀 끼어들 여지를 찾지 못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