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강복을 들어갔는데 이런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신부님은 악령 들린 사람이 보이십니까?”
그래서 대답해 드렸습니다.
“설령 보인다고 한들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런 이가 있다면 누군가가 악령이 들렸다고 이야기해 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손을 펼쳐서 다들 앉으시라고 신호를 드리고 저도 앉아서 차근차근 설명을 드렸습니다.
“제 앞에 병이 있네요. 이 병을 제가 손으로 움직이면 이 병은 순응하고 그에 따라 움직입니다. 제 손의 힘이 이 병의 무게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지요. 이렇게 물질계는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영혼은 이런 병처럼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은 자기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결정을 내리고 나면 그것은 하느님도 어찌할 수 없는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누군가가 어둠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서 그에게 다가가 상태가 위중하다고 위협을 한다면 그가 과연 순순히 자신이 가던 어둠의 길을 내려놓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성으로 알고 있지요.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면 안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악습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서 그의 잘못을 바로 지적하고 고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위협하면 그들은 그들의 악습을 고치기는 커녕 더한 어두움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즉, 전에만 해도 드러내던 어둠의 모습을 이제는 더 감추고 숨어들게 되겠지요. 더욱 음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그에게 악령이 보인다느니 해서 겁을 주는 게 아니라 반대로 더 큰 사랑과 인내와 겸손과 온유로 다가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들이 선한 것에 익숙해져서 자신이 지녀오던 악습을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결정하면서 살아갑니다. 보다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에서 좋은 것을 드러내 보여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기심과 탐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선한 삶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 스스로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도와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제 왜 악령들린 사람에게 다가가서 대놓고 악령이 들렸다고 이야기하면 안되는지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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