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루카 4,29-30)
사람들의 악은 예수님을 극단으로 몰아가지만 예수님은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오십니다.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지요. 예수님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사람들의 죄악을 한 몸에 지고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악은 언제나 선을 밀어붙입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왜냐하면 선은 악에게 ‘부담스러움’이기 때문에 악에게 있어서 선은 사라져 없어져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이들, 세상안에서 정의를 추구하고 평화를 찾으며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이들은 언제나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의 도전에 직면합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그들 특유의 괴팍함과 음험함, 사악한 영리함으로 선한 이들을 압박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래서 악한 이들은 ‘대화’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대화라는 것은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악한 의도를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한 이들은 짜증, 분노, 고성과 같은 수단에 익숙합니다.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침착하게 나누는 일에 미숙하며 그렇게 해야 할 마땅한 이유도 찾지 못합니다. 그들은 서로의 합일점을 찾아야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상대를 이겨야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언제나 벼랑으로 밀립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런 의인들에게 초자연적인 도움을 내려 주시곤 하십니다. 그리고 의인은 자신의 때가 이르기 전에는 그 밀어붙이는 이들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빠져나올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때가 이르게 되면 의인들은 그에 합당한 수난을 당하게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추가를 하면, 적지 않은 악인들은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야말로 수난을 당하는 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러나 의인과 악인을 나누는 훌륭한 분별 기준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내적 평화’입니다. 의인은 혼란 중에서도 마음이 평화롭지만 악인은 아무리 조용하게 있어도 속이 시끄럽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양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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