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은 그저 가난한 동네에 만원짜리 몇 장 보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착해지는 데에는 내적인 변화가 요구됩니다. 착함은 보다 일상적인 것이며 존재의 근원에 가 닿는 것입니다. 우리는 착해 보일 수는 있지만 진정한 착함에 가 닿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의지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착함은 말 그대로 ‘선’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착한 척을 하기만 한다면 실제로 우리는 증오와 원한과 앙심을 선호하면서도(그러한 것을 그대로 나의 내면에 남겨두면서도) 겉으로는 불쌍한 상황에 동정을 보이는 척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증오에 온갖 정당함을 부어 넣습니다. 우리의 모든 지성을 짜내어 우리의 증오를 정당화 시키고 합리화 하지요. 하지만 아무리 꾸며진다고 해도 원래의 것이 성질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증오에서 나온 것은 증오일 뿐입니다.
곧잘 정치판에 분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인으로서 주변의 상황을 인지하고 그에 적절한 반응을 할 필요는 있지만 흔히들 사람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을 쏟아부어 증오와 원한을 형성한 뒤에 그것을 교묘히 감추고 자신의 증오의 논리를 합리화시켜주는 온갖 이론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증오를 정당화 시키려고 합니다.
이런 이들도 얼마든지 성당에 나올 수 있고 행사와 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준비해야 할 예복, 즉 진리와 선과 사랑의 예복, 즉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그 아름다운 예복을 올바로 준비하지 못할 것이며 훗날 하늘 나라에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선을 즐기지 못하는 이는 선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착해져야 합니다. 반항하는 아이가 되지 말고 하느님의 선에 순종하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착해짐은 멍청해짐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지혜로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그 지혜는 세상의 영리함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전해져오는 지혜로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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