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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법칙

정글의 법칙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 중에,
"힘을 더 큰 힘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 있다.
이는 물리적인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과연 그러해 보인다.
수많은 영화 속에서 '악인'의 역할을 맡은 이들이 한결같이 나타나는 바이다.
어느 무기에 더 큰 무기를 만들어 이겨버린다는 설정...

정글을 보라, 먹이사슬이 뚜렸하다.
풀은 토끼가 먹고, 토기는 하이에나가 먹고, 하이에나는 사자가 먹는다.
이렇게 우리는 피라미드 형태로 그려볼 수도 있다.
하지만 피라미드의 최상은 결국 가장 바닥으로 돌아온다.
결국 밀림의 왕 사자도 죽어 썩어서 세균들에게 뜯어먹히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결국 악인들도 선인들의 지혜에 무너진다.
다이하드만 봐도 존 맥클레인이 홀몸 혈혈 단신으로 사람들을 지켜내겠다는 사명감과
이런 저런 지혜로운 방법으로 그 수많은 악인들을 이겨내지 않는가?
뭐 비유가 좀 틀릴 수도 있겠다.
이러든 저러든 맥클레인이 마구마구 죽여대긴 하니까 ㅎㅎㅎㅎㅎ

세상에 넘쳐나는 어둠의 세력은
결코 더 큰 힘으로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건 내리누르는 게 아니라 '속에서 녹여내야 하는 성질의 것'이다.

아직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똑똑한 놈 위에 늘 더 똑똑한 놈이 나타나게 마련이고,
힘있는 놈 위에 늘 더 힘있는 놈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똑똑하던 놈들도 언젠가 지식이 다하여지고,
힘있던 놈들도 언젠가 힘이 빠지게 마련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가슴 깊이 간직하신 율법주의자분들이 많으셔서 가슴 아프다...
도대체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그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느낄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예수님의 희망찬 말씀이 다름아닌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걸 이해하기에는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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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를 모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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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이랑 목사님은 뭐가 달라요?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미사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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