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낄 수 있는 대상이나 상대가 없으면 나라는 존재도 무의미하다.
어느날 일어났는데 내가 무중력 상태에가 온통 암흑 천지에 던져진다고 생각해보라.
심지어는 별도 없는 그 곳에서 내 신경은 마비되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자리에서 홀로 나만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나'란 존재가 무슨 가치를 지닐 것인가?
주변에서 내가 마주하는 사물들과 사람들을 통해서 나는 비로소 '나'가 되는 것이다.
주변에 사물만 존재하면 나는 그 사물을 조종하는 조종자가 될 뿐이다.
나와 상응하는 그가 있을 때에 나 역시도 그만한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가 그를 사물로 대할 때
그는 나에게 '이용가치'에 따라 판단되고
그런 나 역시도 '이용가치'에 따라 분별될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사랑으로 대할 때에
나는 그를 사랑의 위치로 올릴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사랑의 위치로 격상시킨다.
짧은 말마디지만 느낌이 왔으면 좋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을 '효용가치'로 판단한다.
아니다 그는 그 자신일 뿐이고,
우리가 그에게 쏟는 그 사랑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치도 드높이는 셈이다.
우리가 사지가 마비된 환자를 그 효용가치로만 판단해서
이 사람은 현세에서 무용하다고 판단하면,
나 역시도 그 판단으로 심판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사람도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이고
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사람은,
그를 진정한 하나의 '상대자'로 대할 줄 알게 되고,
나의 존재 가치 역시도 마찬가지의 관점,
즉 그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살아있음으로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은 다르다.
인간의 생각으로 예수의 효용가치를 따져서
예수님이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할 때에 따로 데리고 가서는 야단치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는 가혹한 말을 내던지셨다.
하느님의 생각은 다르다.
하느님의 생각은 한참 다르다.
하느님 앞에 선 우리 모두는,
심지어 그 사람이 장애인이건, 몸을 파는 창녀이건,
탐욕에 사로잡혀 정신 못차리는 정치인이건,
모두 그 영이 구원되기를 기다리는 길 잃은 양들에 불과하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그건 우리 몫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