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 사제와 이방인 고아와 과부를 대상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실천
십일조는 그 말의 의미 그대로는 소득의 10분의 1을 봉헌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수확물을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만 기대야 했던 농부들이나 목자들은 하늘의 도우심이 없이는 충분한 수확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해 소출이 나오면 감사의 의미로 기꺼이 수확의 10분의 일을 바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이 수확물이 '화폐'로 바뀌고 있고, 노동의 환경도 마치 하느님의 손길에서 멀어지는 것 같이 되어버려 그 누구도 쉽사리 자신이 벌게 된 것을 하느님의 도움과 연관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다들 봉헌을 아까워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이런 분위기입니다. "내가 뼈빠지게 직장생활해서 번 돈인데 하느님이 도대체 한 게 뭐가 있다고?"라는 식이랄까요?
그러면 십일조의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요? 성경안에서는 3부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레위인'들과 '이방인'들, 그리고 '고아와 과부'들입니다. '레위인'들은 하느님에게 제사드리는 것 외에는 다른 수입활동이 없는 이들, 즉 오늘날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일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수도자들은 각 수도회별로 나름 수입이 있는 회도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소외된 이들을 말합니다. 자기가 사는 땅을 떠나 다른 나라로 오게 된 이들, 자기 땅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었던 기본 권리들, '언어, 문화, 그 밖의 제반조건'들을 상실한 이들을 말합니다. '고아와 과부들'은 기댈 곳이 없는 이들, 부모와 남편이라는 존재를 잃고 기반을 잃은 이들을 말합니다.
결국 십일조는 하느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드리고 그 사랑에 동참하여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한국 가톨릭 교회는 십일조를 문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사람들의 현실을 고려해서 다른 미사 봉헌 예물까지도 생각하고 그 밖의 다른 기부활동도 생각을 해서 20분의 1정도를 바치도록 하고 있지만, 실은 그마저도 아니고 각자 자기 능력껏 봉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주임 사제와의 상의하에 현실을 고려해서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신자나 교회 모두 이 십일조의 본 의미(사제, 이방인, 고아와 과부를 대상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실천)를 얼마나 알고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나아가 교회 역시도 이 십일조를 행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민수기에서 이 레위들의 십일조를 하느님께 들어올려 바치라고 명하지만, 그 현대적인 실천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찾으라고 하셨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소득의 10분의 1을 떼어 지극히 소외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겠지요.
사실 신자분들이 십일조를 본 의미 그대로 감사와 실천의 의미로 이행하고 교회 역시 십일조의 본 의미대로 자신들의 기본 생계와 더불어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아낌없이 내어 바친다면 신자들과 교회 모두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까워하는 마음'이 신자들 측에서도 교회 측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문제는 파생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바치는 십일조는 하느님 앞에 드리는 예물입니다. 모쪼록 아까운 마음을 버리고 기꺼이 감사드리는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역시도 루카 복음에서 이런 십일조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보다 근본에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는 '돈'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의미로 그것을 다루고 있는지 스스로 잘 성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질적 아까움'으로 그것을 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진정한 의로움과 사랑'을 위한 도구로서 잘 활용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참조 성경구절
신명기 26장
12 “너희는 세 해마다 십일조를 바칠 때에 너희 소출에서 십분의 일을 모두 떼어 놓고, 그것을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그들이 너희 성안에서 배불리 먹게 될 때,
13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희는 거룩한 것을 저희 집에서 떼어 놓아, 그것을 당신께서 저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계명대로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었으며, 당신의 계명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잊지도 않았습니다.
민수기 18장
26 “너는 레위인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재산으로 주는 십일조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서 받으면, 너희는 그 십일조에서 십일조를 떼어 주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예물로 올려야 한다.
루카 11장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십일조는 그 말의 의미 그대로는 소득의 10분의 1을 봉헌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수확물을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만 기대야 했던 농부들이나 목자들은 하늘의 도우심이 없이는 충분한 수확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해 소출이 나오면 감사의 의미로 기꺼이 수확의 10분의 일을 바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이 수확물이 '화폐'로 바뀌고 있고, 노동의 환경도 마치 하느님의 손길에서 멀어지는 것 같이 되어버려 그 누구도 쉽사리 자신이 벌게 된 것을 하느님의 도움과 연관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다들 봉헌을 아까워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이런 분위기입니다. "내가 뼈빠지게 직장생활해서 번 돈인데 하느님이 도대체 한 게 뭐가 있다고?"라는 식이랄까요?
그러면 십일조의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요? 성경안에서는 3부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레위인'들과 '이방인'들, 그리고 '고아와 과부'들입니다. '레위인'들은 하느님에게 제사드리는 것 외에는 다른 수입활동이 없는 이들, 즉 오늘날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일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수도자들은 각 수도회별로 나름 수입이 있는 회도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소외된 이들을 말합니다. 자기가 사는 땅을 떠나 다른 나라로 오게 된 이들, 자기 땅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었던 기본 권리들, '언어, 문화, 그 밖의 제반조건'들을 상실한 이들을 말합니다. '고아와 과부들'은 기댈 곳이 없는 이들, 부모와 남편이라는 존재를 잃고 기반을 잃은 이들을 말합니다.
결국 십일조는 하느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드리고 그 사랑에 동참하여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한국 가톨릭 교회는 십일조를 문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사람들의 현실을 고려해서 다른 미사 봉헌 예물까지도 생각하고 그 밖의 다른 기부활동도 생각을 해서 20분의 1정도를 바치도록 하고 있지만, 실은 그마저도 아니고 각자 자기 능력껏 봉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주임 사제와의 상의하에 현실을 고려해서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신자나 교회 모두 이 십일조의 본 의미(사제, 이방인, 고아와 과부를 대상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실천)를 얼마나 알고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나아가 교회 역시도 이 십일조를 행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민수기에서 이 레위들의 십일조를 하느님께 들어올려 바치라고 명하지만, 그 현대적인 실천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찾으라고 하셨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소득의 10분의 1을 떼어 지극히 소외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겠지요.
사실 신자분들이 십일조를 본 의미 그대로 감사와 실천의 의미로 이행하고 교회 역시 십일조의 본 의미대로 자신들의 기본 생계와 더불어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아낌없이 내어 바친다면 신자들과 교회 모두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까워하는 마음'이 신자들 측에서도 교회 측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문제는 파생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바치는 십일조는 하느님 앞에 드리는 예물입니다. 모쪼록 아까운 마음을 버리고 기꺼이 감사드리는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역시도 루카 복음에서 이런 십일조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보다 근본에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는 '돈'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의미로 그것을 다루고 있는지 스스로 잘 성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질적 아까움'으로 그것을 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진정한 의로움과 사랑'을 위한 도구로서 잘 활용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참조 성경구절
신명기 26장
12 “너희는 세 해마다 십일조를 바칠 때에 너희 소출에서 십분의 일을 모두 떼어 놓고, 그것을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그들이 너희 성안에서 배불리 먹게 될 때,
13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희는 거룩한 것을 저희 집에서 떼어 놓아, 그것을 당신께서 저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계명대로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었으며, 당신의 계명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잊지도 않았습니다.
민수기 18장
26 “너는 레위인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재산으로 주는 십일조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서 받으면, 너희는 그 십일조에서 십일조를 떼어 주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예물로 올려야 한다.
루카 11장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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