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한다는 것
사람이 자란다는 것은,
사람이 커나간다는 것은,
어느 한 부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다 큰 어른이 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미숙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사람의 성장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겪는 '육적 성장'과 더불어
'정신적 성장', 그리고 '영적 성장'을 전제로 한다.
'육적 성장'이야 먹기만 잘 먹으면 별 탈 없이 크는 거니까 제쳐두도록 하고,
'정신적 성장'라는 것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여러 지식과 상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많은 부모들이 여기까지만 보살핀다.
어쩌면 여기까지밖에 보살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 역시도 마지막 성장단계인 '영적 성장'에는 이르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적 성장'은 사실 우리들 끼리 이루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물질이 물질 세계의 소스를 받아서 커나가고,
정신은 정신적인 소스를 통해서 커나가듯이,
영혼은 영적인 소스가 필요한데 정작 우리 자신들에게서는
이를 분별할 능력조차 없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 이 '영적인 영역'은 하느님과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부모는 이를 위해 적합한 환경(교리교육, 미사참례 등등)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이 영역은 전적으로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우리의 하느님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분이시라,
이 교육을 언제나 제공하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문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이 그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그저 '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고 이리 저리 도망다니는 통에,
그들은 영적으로 '전혀' 성장하지 못한다.
고통에 정면승부를 던지는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이다.
내 앞에 다가온 시련은 분명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이다.
내가 꺼려하는 모든 고통의 영역의 근본을 잘 뒤져보면
분명히 하느님께서 나에게 건네시려는 말씀들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추상적인 말들보다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내가 아끼던 시계를 잃어버렸다."
분명 우리는 그 아까운 마음에 정신없이 시계를 찾게 될 것이다.
때로는 이후에 다가오는 실제적인 일들마저 제쳐두고 그 시계에 집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하느님은 우리 마음에
'우리가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한 실체를 밝혀주려 하시는 지 모른다.
그걸 우리가 배우게 된다면, 우리는 시계가 없으면 다른 걸로 시간을 알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또 다른 사물들에 똑같은 '집착'을 지니고 살아갈는지 모른다.
오늘도 하느님은 여러가지 방면으로 우리를 당신에게 초대하신다.
그 궁극 지향점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대변되는 것이지만,
그 마지막 목적지를 깨닫기에 우리의 육체는 너무나 나약하고, 우리의 정신은 피폐한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말고 마음을 다잡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이야기에
귀를 활짝 열도록 하자.
우리도 모르는 새에 부쩍 커 있는 우리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