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제가 하고 싶은 것 중에 할 수 있는 걸 합니다. 아주 쉽고도 간단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제가 하고 싶은 것 중에 할 수 있는 걸 합니다. 하기 싫은 걸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장 눈 앞에는 하기 싫은 일이라도 그것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완수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직장생활은 하기 싫지만 돈은 벌어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 직장생활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지요. 만일 돈을 벌어 쓰고 싶지 않는대도 하기 싫은 직장생활을 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일들, 우리가 하는 수많은 일들은 결국 그 가장 근본에 ‘이유’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들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두 가지 큰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살고 싶다.’와 ‘영원히 살고 싶다.’는 것이 가장 주된 큰 이유가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고 싶고, 사는 것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 생의 범위가 어딘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현세의 생만을 쥐고 사는 사람을 세속적인 사람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 무신론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삶은 죽음으로 끝난다고 믿는 이들이지요. 이들의 껍데기는 다양합니다. 심지어 가톨릭 신자의 껍데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껍데기만 그러할 뿐 이들은 세속 삶을 더욱 즐기는 무신론자들입니다. 그저 입으로만 ‘주님 주님’ 하는 이들이지요.
영원의 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영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의 생이 영원을 향해 뻗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지요. 따라서 이들의 삶의 모습은 확연히 다릅니다. 이들은 현세의 것들의 그 본질적인 특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나간다’라는 특성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국에는 지나가고 마는 것을 아는 셈입니다.
이 두 부류가 세상 안에서 행하는 일은 확연히 다릅니다. 하지만 그 껍데기는 똑같습니다. 둘 다 직장생활을 하고 둘 다 가정을 꾸리지요. 하지만 한 사람은 세상 안에서의 삶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하고 다른 사람은 영원의 삶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삶의 여유, 행복과 기쁨은 당연히 영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은 그 끝을 스스로 느끼고 자꾸만 조급해하고 더욱 탐욕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입니다. 반면 영원 안에서 희망을 키워나가는 사람은 도리어 자신이 죽고 사라질수록 영원의 자신이 더욱 굳건해 진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유롭고 평화로우며 기쁘고 행복합니다.
직장생활은 하기 싫지만 돈은 벌어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 직장생활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지요. 만일 돈을 벌어 쓰고 싶지 않는대도 하기 싫은 직장생활을 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일들, 우리가 하는 수많은 일들은 결국 그 가장 근본에 ‘이유’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들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두 가지 큰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살고 싶다.’와 ‘영원히 살고 싶다.’는 것이 가장 주된 큰 이유가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고 싶고, 사는 것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 생의 범위가 어딘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현세의 생만을 쥐고 사는 사람을 세속적인 사람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 무신론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삶은 죽음으로 끝난다고 믿는 이들이지요. 이들의 껍데기는 다양합니다. 심지어 가톨릭 신자의 껍데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껍데기만 그러할 뿐 이들은 세속 삶을 더욱 즐기는 무신론자들입니다. 그저 입으로만 ‘주님 주님’ 하는 이들이지요.
영원의 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영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의 생이 영원을 향해 뻗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지요. 따라서 이들의 삶의 모습은 확연히 다릅니다. 이들은 현세의 것들의 그 본질적인 특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나간다’라는 특성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국에는 지나가고 마는 것을 아는 셈입니다.
이 두 부류가 세상 안에서 행하는 일은 확연히 다릅니다. 하지만 그 껍데기는 똑같습니다. 둘 다 직장생활을 하고 둘 다 가정을 꾸리지요. 하지만 한 사람은 세상 안에서의 삶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하고 다른 사람은 영원의 삶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삶의 여유, 행복과 기쁨은 당연히 영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은 그 끝을 스스로 느끼고 자꾸만 조급해하고 더욱 탐욕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입니다. 반면 영원 안에서 희망을 키워나가는 사람은 도리어 자신이 죽고 사라질수록 영원의 자신이 더욱 굳건해 진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유롭고 평화로우며 기쁘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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