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가들 중에는 가르쳐야 해서 가르치는 사람이 있고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는 일을 하는 월급쟁이일 뿐이고, 후자는 일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월급쟁이는 일을 즐기는 사람을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물론 세상 안에서는 대기업 월급쟁이가 중소기업 사장을 이기기도 합니다마는 내적인 면으로 언제나 승리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설교가는 눈에 드러나는 결과물이 좀처럼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이 뿌린 씨앗에서 싹이 트는가 아닌가 하는 결과를 훗날 모아볼 수 있다면 정말 가르치고 싶어한 것을 가르친 사람이 뿌린 씨앗에서 더 많은 싹이 터져 나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르치고 싶어지는 이유는 사람들을 알기 때문입니다.
유치원생들 앞에 가서 신학 강좌를 여는 설교가는 멍청한 사람입니다. 사실 신학 강좌는 신학자들도 크게 즐기지 않습니다. 누구나 술자리, 편안한 자리, 진실한 대화가 있는 자리를 즐기지 학술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신학 강좌를 시간을 내어서 즐겨 들으려는 사람은 정말 공부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없는 셈이지요.
설교가는 가르치고 싶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에게 가르침을 적용시켜야 하지요. 내가 재미가 없는 걸 다른 이에게 재미있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나를 알고, 타인을 알고, 또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언뜻 요구조건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이 세 가지는 모두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주제입니다.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은 이웃과 하느님을 알게 되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나 자신의 상태와 하느님 사랑의 본질을 알게 되며, 하느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결국 나와 이웃을 배우게 되지요.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설교가,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해야 해서 하는 일은 사실 열매가 없는 나무를 심는 행위입니다.
설교가는 눈에 드러나는 결과물이 좀처럼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이 뿌린 씨앗에서 싹이 트는가 아닌가 하는 결과를 훗날 모아볼 수 있다면 정말 가르치고 싶어한 것을 가르친 사람이 뿌린 씨앗에서 더 많은 싹이 터져 나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르치고 싶어지는 이유는 사람들을 알기 때문입니다.
유치원생들 앞에 가서 신학 강좌를 여는 설교가는 멍청한 사람입니다. 사실 신학 강좌는 신학자들도 크게 즐기지 않습니다. 누구나 술자리, 편안한 자리, 진실한 대화가 있는 자리를 즐기지 학술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신학 강좌를 시간을 내어서 즐겨 들으려는 사람은 정말 공부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없는 셈이지요.
설교가는 가르치고 싶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에게 가르침을 적용시켜야 하지요. 내가 재미가 없는 걸 다른 이에게 재미있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나를 알고, 타인을 알고, 또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언뜻 요구조건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이 세 가지는 모두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주제입니다.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은 이웃과 하느님을 알게 되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나 자신의 상태와 하느님 사랑의 본질을 알게 되며, 하느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결국 나와 이웃을 배우게 되지요.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설교가,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해야 해서 하는 일은 사실 열매가 없는 나무를 심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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