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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도

- 주변에서 날더러 광신도라고 해요.

오늘 저녁 식사 전에 교사들과 모여 있는 중에 나온 질문입니다.

- 잘 들어봐. 사람은 저마다의 고유한 직분이 있어. 사제는 하느님에게 헌신하는 제단의 봉사자이어야 해. 그리고 수도자는 기도에 헌신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그리고 평신도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야. 그래서 저마다의 직분에 맡게 헌신하는 영역이 달라. 사제가 지나치게 세상 일에 신경 써도 이상한거고, 수도자가 지나치게 사목에 치중하는 것도 이상한거고, 평신도가 교회에만 매달려 있는 것도 이상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평신도에게 교회의 영역이 없는 것도 아니야. 평신도는 세상 안에서 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최소한의 것은 해야 하는 법이야. 즉 주일 미사를 성실히 나오고 신앙생활을 꾸려 나가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지. 누군가 자기가 가톨릭 신자라고 하면서 실제로 신자로서 그 어떤 책무도 떠맡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 분명 엇나간 모습이야. 균형 감각을 회복하는 것 그게 참 중요해.

자, 그럼 이제 살펴보자. 평신도로서 균형 감각은 뭘 의미할까? 어디 딱 고정된 활동의 범위가 있는걸까? 그건 아니야. 우리는 각자의 수준에 맞게 활동할 수 있게 마련이야. 집에서 학교나 직장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는 성당에 와서도 열심히 일할 수 있어. 하지만 집과 사회에서 제 역할을 못하면서 성당을 도피처로 찾는 것은 균형감각을 상실한 셈이 되는거지. 그래서는 안되는거야. 그리고 우선권은 어디에 있는 걸까? 한 엄마가 집이 잘 돌아가서 성당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 순간에 자기는 성당에 헌신하는 사람이기에 그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있을까? 아니야, 그 순간에 엄마는 자녀들을 돌봐야 하는 거야. 그래서 성당에 양해를 구하고 성당 일을 잠시 포기하고서라도 먼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거지.

균형감각이 존재하는 사람은 주변의 의견에 흔들릴 필요가 없어. 균형잡힌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데도 성당에서 하는 활동을 두고 ‘광신도’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그들부터가 올바르지 못한 것을 반증할 뿐이니까 말야. 하지만 절대로 성당을 현실의 도피처로 찾으면 안되. 그럼 그게 바로 광신도인 셈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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